'몰랐다' 정인이 양부에 중형 구형…"'방임의 방임' 고리 끊어야"

검찰 "기소된 죄명으로는 최고형량 구형"
양부, 정서적 학대·방임 혐의…학대 종용한 정황도 드러나
전문가들 "방임=학대, 장기화하면 더 심각한 학대로 이어져"
"양형 조사, 사례관리·사후관리 강화해야…적극적인 신고도 필요"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에게 장기간 학대를 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가 지난 1월 13일 첫 재판을 마친 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민 기자
16개월 정인이의 학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부 안모씨에게 검찰은 징역 7년 6개월을 구형했다. 안씨는 법정에서 '몰랐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학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조치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18일 CBS노컷뉴스가 만난 전문가들은 "방임의 방임"을 말했다. 학대로 사망한 피해 아동 5명 중 1명(21.4%)이 방임으로 숨졌다(2019년 보건복지부 통계). 방임 학대는 사회의 안이한 인식과 느슨한 관리감독 속에 방치돼왔다. 검찰의 표현대로 입양 부모에게 '선택당한' 피해자 정인이도 마찬가지였다.

◇법정서 드러난 양부의 학대…'방임'에 '학대 종용'까지


검찰은 지난해 12월 양부 안씨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메신저 등을 보면 안씨는 양모 장모씨의 학대 행위를 알았을 것으로 보이며, (학대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안씨는 물리·의료·교육적 방임, 유기 등 모든 유형의 방임을 자행했다.

안씨는 아내 장씨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정인이를 '귀찮은 X'이라고 지칭(2020.3.4)하고, "하루종일 온전히 굶겨봐"(2020.9.15)라고 말하면서 방임을 부추겼다. 정인이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정인이 사망 전날 아이의 건강 상태가 심각해지자 어린이집 원장이 병원 진료를 권했지만, 이 역시 따르지 않았다. 2개월 넘게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않았으며, 입양 초기부터 수시로 집·차량 등에 정인이를 홀로 방치했다.

정인이 사망 전 있었던 세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 이후 학대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지만, 안씨는 그때마다 학대를 방관하고 정인이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장씨는 아이에게 손 댈 사람이 아니다", "때리거나 방치한 사실 전혀 없다", "오다리 마사지를 하다가 그런 것 같다. 원래 아토피로 피부가 약하다"(1차 신고), "쇄골 골절은 모른다. 실금이 나 있어 당황했다"(2차 신고), "입양에 대한 편견이 아닌가 싶다"(3차 신고)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에게 장기간 학대를 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가 지난 1월 13일 첫 재판을 마친 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민 기자
안씨는 법정에서 "(장씨가) 예민할 때 지적하는 게 상황을 더 악화한다고 생각했다"며 "정인이를 생각하면 감옥에서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하루만 자리를 비워도 분리 불안을 느껴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첫째를 보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마음이 무겁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변호인은 검찰을 향해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알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 외에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학대 방임을 단정하고 있다"고 했다.

◇방임 학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현장에서는 "언론에 이슈화돼서 이 정도로 구형한 것", "'칠곡 학대 사건'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붓어머니에게 징역 10년, 방임한 친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사건이 떠오른다"는 씁쓸한 반응이 나온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아동학대 사례 유형을 보면, 중복 학대(48.2%)가 가장 많고, 정서 학대(25.4%), 신체 학대(13.9%), 방임(9.6%)순이었다. 중복 학대에는 방임이 포함됐다. 2019년에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 39개(42명) 가운데 8건(8명)이 '극단적 방임'으로 인한 사망(19%·아동 수 기준)이었다. 2018년 방임으로 인한 아동 사망 비율은 18%로 나타났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린 지난 2월 17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전문가들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방임 학대가 매우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방임은 외부에서 신고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발견돼도 적정한 사례관리나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을 분석한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강현아 교수는 "치명적인 신체 학대와 기본욕구 박탈 유형(극단적 방임)에 위험 요인이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고 짚었다.

이 같은 심각성에도 방임 학대에 대한 처분은 보호처분 등에 그치거나 아예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2019년 복지부 통계를 보면, 방임죄는 형사처벌(0.7%)보다 보호처분(9.1%)을 받는 비중이 높았다. 안씨와 같이 정서적 학대, 방임 중복 학대를 한 경우도 보호처분(19.6%)이 형사처벌(0.8%)보다 많았으며, 수사 미진행 등의 경우가 12.6%에 달했다.

검찰이 안씨에게 구형한 징역 7년 6개월도 현행법상 최고 형량이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을 상대로 신체적·정서적 학대, 방임 행위 등을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경합 가중하면 7년 6개월 이하가 처단형의 범위다.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 4월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앞에서 엄벌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방임의 사회적 방임'…"적극적인 신고, 사례관리 필요"

전문가들은 방임은 학대이며, 심각한 학대로 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짚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사회가 방임을 방임한다'고 이야기한다"며 "때리는 건 눈에 보이지만, 방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학대만큼, 학대보다 더 심각하게 지속되고 사망률도 높다"고 말했다.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박명숙 교수는 "사람들이 방임을 학대라고 인식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처벌이 있어야 신고감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주 극단적인 학대 사례만 신고해 놓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임 학대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 사례관리와 법적 처분 이후의 관리를 강조했다. 정익중 교수는 "신고 의무자 등 피해 아동을 꾸준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세심히 관찰해 신고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강현아 교수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급한 사안'을 위주로 개입하다 보니 방임 학대에 소홀하고 개입을 덜 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인력과 예산을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서적 학대, 방임 등 혐의에 대한 충분한 양형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명숙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정인이 사건'처럼 주된 학대 행위자 1명을 정범, (다른 가해자를) 종범이나 방조범으로 해 형을 가볍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대가 장기간 이뤄졌고 이를 제지하지 않고 방관하고 부추겼다면, 단독(범행)이 아니라 공동정범으로 적시해 역할 분담, 가담 정도에 따라 형량을 달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도 "(현재 양형기준으로는) 범죄 혐의를 왜 이렇게 적용했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지난 1월 보호자가 가하는 형법상 상해 등 다른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하고, 아동복지법상 일부 금지 행위에 '특정 가중요소'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개선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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