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선수 30%↑ 신체폭력 시달려…성폭력도 17%"

인권위, 조재범 성폭력 이후 '빙상종목 특별조사'
"빙상선수 인권은 더욱 심각…각종 폭력에 노출"
초·중·고 학생 피해도 평균 이상…"아동학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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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시행한 '빙상종목 인권 특별조사' 결과 빙상 선수가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전체 스포츠 분야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업선수의 폭력 피해는 전체 평균의 2배를 웃돌았고, 초·중·고 학생선수들도 평균 이상의 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인권위는 "특별조사 결과 빙상선수의 인권은 스포츠 분야의 전반적으로 취약한 인권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더욱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빙상종목 선수들이 각종 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2019년 7월부터 한 달 동안 전체 초·중·고 및 대학 학생선수와 실업 선수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이 중 빙상선수 응답 데이터를 추출·분석했다. 또 2019년 5월부터 66명의 빙상선수를 대상으로 그룹 또는 1:1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언어·신체·성폭력 전반에서 빙상선수들의 피해 응답 비율이 전체 스포츠 분야의 평균보다 높았다. 실업선수만 보면 언어폭력 경험 비율은 57.8%로 평균(33.9%)을 크게 웃돌았고, 신체폭력 31.2%(평균 15.3%), 성폭력 17.1%(평균 11.4%) 등으로 집계됐다.

이중 '불쾌한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선수는 총 23명으로, 초등학생 7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 5명, 대학생 2명, 실업팀 7명 등이었다. 가해자는 주로 코치였고, 훈련장이나 숙소에서 일어났다.

특히 마사지·주무르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총 4건이었고, 가슴·성기 등 강제추행 피해는 3건, 신체부위를 몰래 또는 강제로 촬영을 당한 경험은 1건(여자 고등학생), 강제 키스·포옹·애무나 성관계 요구 등도 각 1건씩 확인됐다.

하지만 대다수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아무런 행동을 못함', '얼굴을 찡그리는 등 소심하게 불만을 표시함', '괜찮은 척 웃거나 그냥 넘어감'이라고 응답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났다'고 응답한 이는 고등학생 1명을 제외하곤 모두 '0명'이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특히 대학생 선수 집단을 제외한 초·중·고 학생 선수의 경우에서도 빙상 종목 인권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빙상 선수의 신체폭력 피해 경험은 26.2%로 전체 평균(13.0%)의 2배에 달했다.

학생선수들은 새벽·오후·저녁 훈련 등 매일 4~5시간 이상의 장시간 훈련을 받아오고 있었다. 한 학생 선수는 "새벽 5시에서 7시까지 운동하고 학교 잠시 갔다가 12시까지 빙상장으로 가고, 또 1시부터 3시까지 훈련하는 시스템"이라고 진술했다.

인권위는 "빙상종목 선수들이 휴식 시간 없이 거의 하루 내내 운동에 집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물론 성장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 확보에도 어려움을 준다"며 "학습권 침해는 물론 선수들의 정신적·육체적 소진과 부상, 운동 중단 등 아동학대 수준의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빙상계의 심각한 인권 상황의 원인으로 △일부 지도자들의 빙상장 독점적 사용·국가대표 코치 및 선수 선발권·실업팀과 대학특기자 추천권 등 전횡 △선수·지도자의 경직된 위계 구조 △지도자의 폭력이 성적·메달을 위한 것으로 용인되는 문화 △인권침해·체육비리에 대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무능이나 묵인 행위 등이 꼽혔다.

이에 인권위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혁신과 인권침해 예방 종합대책 수립', '지도자 등록 요건 및 각종 위원회 위원의 자격기준 강화', '학원법 개정', '체육시설 설치·운영 기관의 책임성 강화', '빙상종목 학생 선수의 적정훈련 및 휴식 시간 기준 마련' 등을 대책으로 내놨고,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교육부장관, 빙상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에게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빙상종목은 빙상장을 기반으로 육성되기 때문에 학생선수 대다수가 학교 밖 개인코치에게 훈련을 받아 '학교운동부' 중심의 인권침해 예방 체계 밖에 존재하고 있다"며 "다른 종목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배·동료에 의한 (성)폭력이 증가하는데 반해 빙상종목의 주요 가해자는 지도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개인코치에 대한 관리감독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다수 인권침해가 훈련 중 빙상장 내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빙상장 설치·운영 기관에서는 책임 있는 개선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며 "지자체장은 (성)폭력으로 징계 받은 자 또는 성범죄 처벌 경력자의 미성년 대상 개인교습 활동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 마련과 빙상장 독점 등이 허용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재범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조씨와 검찰 측 항소로 오는 23일 2심 선고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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