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빈 윌리엄스가 미팅을 할 때 내 눈을 못 쳐다본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좋게 생각하면 미안해서 그런 것 같은데…"
고양 오리온을 이끄는 강을준 감독이 14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와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데빈 윌리엄스는 외국인 센터 제프 위디의 대체 선수다. 위디는 최고 수준의 골밑 수비력을 자랑했지만 득점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교체 대상이 됐다. 오리온은 데빈 윌리엄스의 득점 생산력에 큰 기대를 걸었다. 입단 후 초반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데빈 윌리엄스가 '마이 웨이'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팀 전력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플레이오프 들어 존재감이 더욱 약해졌다. 데빈 윌리엄스는 1차전에서 7분 출전에 2득점을 올렸고 2차전에서는 16분 동안 코트를 누볐지만 득점이 없었다.
데빈 윌리엄스는 3쿼터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반 10분 동안 4득점을 올렸지만 전반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졌고 팀 플레이 역시 원활하게 펼치지 못했다.
오리온의 2쿼터 작전타임 때는 하나로 모여있는 선수단과 아예 멀리 떨어져 앉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번만 더 패하면 시즌이 끝날 수도 있는 중요한 경기의 승부처에서 팀 작전에 관심이 없는듯한 모습이었다.
강을준 감독은 경기 전 데빈 윌리엄스에 대해 "오늘 (제 몫을) 해주면 땡큐다. 하지만 사실 크게 기대는 안한다"고 체념한듯한 반응을 보였다.
강을준 감독은 후반 들어 데빈 윌리엄스를 기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3쿼터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반을 31대30으로 마친 오리온은 3쿼터 10분 동안 38득점을 몰아넣는 괴력을 발휘했다. 전반 20분 동안 쌓은 득점보다 더 많았다.
데빈 윌리엄스의 전력 이탈로 중책을 맡은 디드릭 로슨이 3쿼터에만 15점을 퍼부었고 이대성도 11점을 보탰다. 오리온은 3쿼터에 3점슛 11개를 던져 7개를 성공하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대성은 3점슛 3개를 모두 넣었다.
결국 오리온은 3쿼터 폭발을 바탕으로 전자랜드를 89대67로 누르고 벼랑 끝 탈출에 성공했다.
고양의 수호신 이승현은 이날도 출전하지 않았다. 부상 때문이었다. 이승현은 그동안 대표팀 차출 등으로 인해 비시즌 때부터 팀과 함께 시즌을 준비한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라며 마무리도 함께 하고 싶다며 출전 의지를 내비쳤지만 강을준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을준 감독은 "감독으로서 마음이 아팠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출전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아직 미래가 밝은 선수다. 열정만은 정말 대단하다. 본인은 실망하겠지만 미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프로 선수에게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는 건 분명 의미가 큰 일이다.
시즌 개막 때부터 동료들과 함께 했던 디드릭 로슨은 이번 시즌 최대 승부처에서 제 몫을 해준 게 오리온에게 큰 힘이 됐다.
로슨은 24득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활약했고 이대성은 17득점 5어시스트를 올렸다. 실책이 1개밖에 없었다. 동료를 살리는 플레이도 잘 펼쳤다. 베테랑 허일영도 16점을 보태며 오리온의 기사회생을 이끌었다.
후반 내내 벤치를 지키던 데빈 윌리엄스는 4쿼터 막판 잠깐 코트를 밟았다.
하지만 성의없이 두 차례 슈팅을 시도하자 강을준 감독은 데빈 윌리엄스를 다시 벤치로 불러들였다.
기사회생에 성공했지만 오리온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즌 초반부터 오리온을 괴롭혔던 외국인선수 한 자리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