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채프먼 대학교 영화·미디어 아트 단과대인 닷지 칼리지 학생, 교수, 졸업생 등과 가진 화상 마스터클래스에서 아시아 혐오 범죄에 관한 소신을 밝혔다.
미국 애틀랜타 연쇄 총격사건 등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 범죄가 연일 발생하며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시민들과 유명인들은 '아시아인 혐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스터클래스 영상에서 한 참석자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 혐오 범죄에 대해서 할리우드와 영화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질문했다. 이에 봉 감독은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도 있었고, 최근 아시아 관련 (혐오 범죄) 그런 걸 보면 무섭다"며 말문을 열었다.
봉 감독은 "저는 어차피 한국이라는 동떨어진 아시아 나라에서 뉴스 화면으로만 그런 것을 보고 있어서, 사실 바깥에 있는 외부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긴 하다"며 "어쨌든 인류의 한 일부로서, 인류에 속해 있는 동시대 존재로서 되게 공포스럽고, 영화 산업 또는 필름메이커(영화 제작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라는 건 한 편 만드는 데 시간도 돈도 많이 들고 덩치가 커서 늦게 움직인다. 어느 사회나 시대의 이슈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고, 거기에 대응하기에 적절한 매체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필름메이커나 창작자들이 그런 이슈에 더 과감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게 1989년도 영화로, 1992년 LA 폭동(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인종폭동) 3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요. LA 폭동을 예언한 영화가 됐는데, 창작자들이 꼭 예언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창작자가 할 수 있는 훌륭한 역할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이미 품고 있는 문제들, 씨앗처럼 언젠가 폭발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예술가의 통찰력으로 그런 걸 묘사하고 그려낼 수 있다는 게, 새삼 다시 그런 부분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봉 감독은 '기생충' 역시 '똑바로 살아라'처럼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만든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시대, 가난한 자와 부자에 대한 이야기"라며 "'빈과 부는 무엇일까'라는 어떤 핵심적인 시대에 대한 물음을 갖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작자들이 시대의 핵심이나 본질에 대해 고민했을 때, '똑바로 살아라'처럼 우리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에 대한 예술가의 응답이 저절로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