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2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차기 총장 인선 절차와 관련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면서 "절차 예측이 어렵고 지금 당장 계획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신속히 지금 공백 상태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서 잘 반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실제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이후 총장 공백 상태가 한 달 동안 지속되고 있지만 법무부는 추천위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달 만해도 기자들을 만나 "이번에는 아주 전광석화처럼 속도감 있게 구상을 하고 있다"면서 "조금 뒤 후보추천위 관련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여당이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면서 차기 검찰총장을 고르는 데 더욱 신중해진 모양새다. 지금까지는 '친 정권' 성향의 이성윤(59·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으로 언급돼왔다. 이 지검장은 현 정권으로부터 '우리 편'이라고 인식될만큼 신뢰를 받고 있다. 조국 사건으로 윤석열 전 총장이 현 정부와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울 때도 이 지검장은 최전선에서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선명성'이 이 지검장의 가장 큰 부담이다. 재보선 국면을 거치면서 문 대통령과 여권의 지지도가 급속도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이 지검장의 차기 총장 선임은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특히 이 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이른바 '황제 조사'를 받았다는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여론의 반발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러나 임기 말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막아줄 총장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최근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기소된 상황이라 정권 입장에서는 위기 의식도 느낄 수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임기 말 총장이기 때문에 가장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이성윤 지검장의 카드가 쉽사리 버려지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이었던 김종민 변호사는 "임기 말 믿을 수 있는 이성윤 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밀어부치려고 했지만 자칫 내년 대선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아무나 시킬 수 없으니 장고를 거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김 변호사는 "하지만 이 지검장은 피의자 신분이고 현재 기소 기로에 놓여있어 역대 최초로 피의자 내지는 피고인 검찰총장을 목격할 수도 있는 황당한 상황"이라며 "선거 결과 민의를 수용해 국민과 검찰 내부 두루 신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총장으로 인선하는게 맞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