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사극 평가 가혹…우리 얘기니까"

'자산어보'를 만든 사람들 ③ 이준익 감독
이 감독이 말하는 '자산어보'와 사극의 매력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이준익 감독이 열네 번째 작품으로 돌아왔다. 그의 주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사극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정약전(1758~1816)과 그의 수산학 관계 서적 자산어보를 조명했다. 그리고 서문과 본문에서 잠깐씩 언급됐던 창대라는 어부를 함께 길어내 조선 후기 근대성이란 무엇인지, 개인주의란 무엇인지 물음을 던졌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지금, 우리를 고민하게끔 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 개인에 초점을 맞춘 이 감독은 학문도 사람도 두 갈래로 나뉜 당대 사회상을 정약전과 창대,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은유처럼 흑과 백 두 가지 색의 농담으로 그려냈다. 흑백으로 그려낸 조선 후기와 약전, 창대의 관계는 그가 담아낸 미시의 세계를 보다 선명하게, 보다 집중해서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많은 사람 중 왜 정약전과 그의 저서 자산어보를 그려냈는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들려줬다. 또한 그가 생각하는 사극의 매력과 사극을 통해 세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개인을 통해 바라본 조선의 근대성

- 이번 영화에서는 조선 후기 학자인 정약전과 그가 집필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인 자산어보를 조명했는데요. 어떻게 많은 사람 중 정약전과 그의 자산어보에 관심을 두게 됐나요?

"조선의 근대성을 개인에게서 찾아보자고 해서 시작했죠. 왜 조선의 근대성을 개인에게서 찾느냐. 우리나라는 최근에 와서 개인주의가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동체주의와 국가주의가 보편적이었어요.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보게 되면 조선의 근대가 어디라고 해야 할까요? 갑오개혁? 동학? 식민지 근대화? 부정확한 조선 근대성의 사건을 찾아 헤매요. 그건 과거 집단주의 사회 관점이죠.

개인주의로 오면, 개인의 근대성을 하나씩 찾아가 보면 맥락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죠. 일단 동학부터 시작해서 왜 동학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죠. 아, 앞에 서학이 있구나. 서학을 알게 됐어요. 서학에 관심 가졌던 인물 중 황사영이 있어요. 황사영 백서가 눈에 띄더라고요. 처음엔 황사영 관련 줄거리를 썼는데, 공부가 부족한 것 같아 덮게 됐죠. (웃음)

'변산'에서 망하고 난 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정약전이 크게 들어오더라고요. 황사영이 정약전의 조카사위거든요. 황사영은 성경을 공부하다 무너진 성리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보고, 조선의 통치체제가 무너져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로마 교황청에 보내려다 붙잡혀 죽었어요. 그 아픈 순간, 정약전이라는 인물은 왜 유배를 가서 자산어보라는 책을 썼는지가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자산어보'는 창대를 붙잡고 생물학책을 쓴 정약전의 가치관은 무엇인가를 찾아낸 영화예요. 어찌 보면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어렵고 깊은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러나 관객에게는 아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찍어야 하죠. 이 영화를 보고 관객분들이 인물의 관계를 감정적으로 잘 엮어서 느꼈다면, (정약전의 가치관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창대의 가치를 인정하며 보여준 건강한 개인주의

- 영화를 보면 창대는 끊임없이 '사람 노릇'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창대를 통해 말하고자 한 '사람 노릇'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그 시대는 신분 사회였어요. 지금은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계급의식이라는 게 있죠. 그런 것은 굉장히 부당한 관점이라고 봐요. 특히 세대에 대한 계급이 있어요. 꼰대라는 말도 있죠. 세대 차라는 것은 굉장히 부정확한 관점이에요. 세대 차보다 더 정확한 게 바로 '개인차'죠. 어린애 같은 할아버지가 있고, 꼰대 같은 아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건 개인차예요. 세대로 구분해서 사고하는 방식은 전근대적인 방식이에요.

창대와 약전의 관계를 세대 간 이해로 보는 사람이 많아요. 관성이니까요. 습관적 관성으로 그렇게 보는데, 난 그렇게 안 봤어요. 개인차죠. 창대의 개인성은 어디로 향하는가? 욕망이다. 욕망의 본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자기 환경에서 자기가 선택하는 거죠. 자산어보의 길을 갈지, 목민심서의 길을 갈지 자신이 선택하는 거예요.

창대는 정약전과 정약용 사이에서 정약전과 정약용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기능으로 드라마를 짰어요. 영웅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비교되는 존재를 뚜렷하게 그려주면 제대로 보이죠. 윤동주의 고뇌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송몽규를 뚜렷하게 그림으로써 윤동주도 선명해졌죠. 약전을 뚜렷하게 그리면 약용이 선명해지고, 창대를 뚜렷하게 그리면 약전이 선명해지죠.

절대적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건 이미 오류예요.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차이를 서로 인정하는 것, 그게 개인주의의 덕목이에요. 이 영화는 약전이 창대를 인정하는 이야기예요. 클라이맥스에서 인정하죠. 후반에 갑오징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아전의 목을 조르는 창대의 모습과 약전의 갑오징어 이야기가 겹쳐지는데요.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갑오징어는 창대와 약전의 거래를 묶어준 생물이죠. 갑오징어 먹물을 찍어 글을 쓰면 선명하고, 이후 퇴색되지만 바닷물에 넣으면 다시 선명해진다고 하죠. 약용에 인정받고, 성리학을 열심히 배웠던 창대는 뚜렷한 먹물 같은 힘 있는 지식인이죠.

그러나 출세한답시고 아전들과 어울리면 다시 희미해질 것 아니냐, 그걸 다시 바닷속에 넣으면 선명한 지식과 가치가 되살아나지 않겠느냐고, 창대가 아전의 목을 조르는 그 순간에 약전은 창대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죠. 격물, 물건의 이름을 짓듯이 창대의 가치를 바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약전이 창대를 존재 증명하는 마지막 대사가 갑오징어와 성게에서 나온 파랑새죠. 성게 껍질 속 알이 파랑새가 됐고, '밤송이 새'라고 부른다고 창대가 말하였다. '~라고 창대가 말하였다'가 중요한 겁니다. 약전은 자산어보에 창대를 언급하죠. 당시 사대부로서 어부가 말한 건 안 써도 돼요. 왜 굳이 쓴 것이냐. 건강한 개인주의인 거죠.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사극영화 속 영화적 선택과 합당한 왜곡이란

- 사람들이 '사극의 대가' '사극 마스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호칭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당연히 크죠. 자칫 발걸음을 잘못하면 내가 내 다리에 꼬이고, 심지어 내 앞에 있었던 영화가 내 방해물이 되는 경우 생겨요. 자만해서 말도 안 되는 허구, 날조를 넣으면 내 영화에 발목 잡히는 거예요.

항상 자막에 이 내용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써요. 이번의 경우는 자산어보 서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재구성한 창작물이라고 했죠. 실록에 나온 건 다 고증하고, 자산어보를 번역한 정명현 선생께 시나리오를 보여드리고 고증을 구했어요. '현산어보를 찾아서' 이태원 작가에게도 또 수십 군데 수정을 받았죠.

어떤 건 고증에 안 맞아도 영화적 선택으로 사용하는 때도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짱뚱어죠. 흑산도에는 사실 짱뚱어가 없어요. 갯벌에서 나는 물고기인데, 흑산도에는 갯벌이 없어요. 이태원 작가가 흑산도에는 짱뚱어가 없다고 지적하셨는데, 제가 양해를 구했어요. 약전이 물고기의 이름을 정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해야 하는데, 짱뚱어가 딱 맞더라고요. 이 작가에게 영화적 선택으로 관객들을 위해 쓰겠다고 양해를 구했죠.

스태프 시사를 할 때 정명현 선생과 이태원 작가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렸어요. 영화에 결정적 결함이 없는지 해서요. 좋다고 평가를 받았죠. 영화적 허용치 안에서 선택이라는 부분이 여러 개 있죠. 그런 고증의 과정을 거치면 됩니다. 엄격한 관객들이 사극에 잣대를 대는 기준, 그 기준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찍으려고 별걸 다 고민했습니다.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줄 때는 저쪽에 있는 걸 이쪽으로 전용해서 표현할 때가 있어요. 한 시대의 맥락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왜곡과 날조가 있는데 날조는 없는 걸 갖다 대는 것이죠. 영화 속 '애절양(哀絶陽)'이라는 한시가 나와요. 이는 본래 정약용이 목격한 걸 시로 쓴 건데 그걸 창대가 본 걸로 했어요. 그 시대 그 자리에 정약용이 있었는데, 그걸 창대로 바꾼 것이죠. 엄밀히 따져 묻자면 이건 합당한 왜곡이에요."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그렇다면 감독님에게 사극이란 어떤 의미이며 어떤 매력을 갖는 장르인가요?

"현대에는 무엇을 하나 하려면 파생되는 다양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보이는 편차가 너무 커요. 그런데 사극은 공통의 역사예요. 너와 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죠.

현대물이 '너희의 이야기'라면 사극이 포커싱하는 대목은 '우리의 이야기'이죠. 전라도 땅끝 흑산도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우리의 이야기예요. 그게 역사의 강점이에요. 공동체 역사를 포커스 하는데 역사극이 굉장히 우월한 지점에 있어요. 그래서 고증과 관점의 평가가 가혹한 것이죠.

만약 '동주'에서 제가 송몽규를 통해 동주를 선명하게 그리려 했을 때, 송몽규에 대한 근거가 부족했으면 엄격한 잣대 아래 저는 곤장을 맞았겠죠. '나의 동주를 네가?'라며 말이죠. '우리의 동주, 우리의 윤동주를 네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역사물은 우리의 이야기인데, 그것이 나와 맞닿으면 내 이야기. 내 아버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가 되는 거죠. 좋은 면이 있어요."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자산어보', 극장과 영화계 위기 넘어설 디딤돌 되길

- 지금 구상하고 있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요?

"널려 있어요. 다음 영화로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짓는 건 이전 영화예요. '변산'을 실패해서 이 영화를 한 거예요.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죠. 만약 '변산'이 잘 됐으면 초심으로 안 돌아가고 더 갔을 겁니다. 그래서 실패는 좋은 보약이에요. 굴곡 없고 질곡 없는 삶은 시시한 거예요."

-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열네 번째 작품 '자산어보'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됐는데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 년간 시간이 멈춰 있었어요. 극장이 아주 위태로운 상황까지 오는 바람에 투자배급사에서 과감하게 당겨서라도 하자 해서, 저는 극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가자고 했죠. 극장이 무너지면 영화가 없어지는 거니까. 극장이 굉장히 중요하죠. 다행히 앞에서 '미나리'가 큰 디딤돌이 되어 줬어요. (개봉 대기 중인 영화가) 뒤로 백 편 가까이 있는데, 우리 영화가 거기 기여해서 또 다른 디딤돌이 된다면 그것도 보람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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