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패 봇물터진 친문 책임론…민주당 '쇄신앓이' 시작

2030·초선·비주류 의원들 당 지도부 겨냥 비판 쏟아내
16일 원내대표·다음달 2일 당대표 선거 앞두고 親文 견제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하지 말았어야" 이낙연 지도부 정조준
"조국 검찰개혁에 국민 분열, 당위성과 동력 잃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등 지도부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발표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당심이 여당 지도부를 매섭게 흔들고 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책임론이 당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쇄신을 담보로 한 차기 지도부 구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와 당 대표 선거를 앞둔 민주당은 내부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쓴소리에 곤혹스런 분위기다.

20대 의원, 초선 의원, 비주류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당 운영 방식과 정책 우선순위 결정, 소통 부재 등을 지적하면서 지도부를 정조준했다. 민주당 귀책사유로 벌어진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낸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정권 4년차 레임덕이라고 치부하기 이전에, 180석을 만들어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강성 지지층에 경도됐던 지도부 판단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 당장 보궐선거를 이끌었던 이낙연 전 대표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일명 '친문'(親文) 인사로 분류되는 중진 의원들의 차기 지도부 출마에도 일정 정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민주당 초선 의원 81명은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이번 보궐선거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며 "국민적 공감없이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해 후보를 낸 뒤 귀를 막았다"고 비판했다. 또 "초선의원들로서 의사결정 과정에 치열하게 참여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 진심없는 사과, 주어와 목적어 없는 사과, 행동없는 사과로 일관한 점도 깊이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남 탓하고 20대 탓하고, 그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읽지 못한다면 당 조직은 그들만의 당이 될 수밖에 없다"(이용우 의원), "그동안 사과가 두루뭉실했다. (박원순 시장 사건은) 2030 여성뿐 아니라 넓은 세대의 여성들이 두루 많이 겪은 일인데 우리가 공감을 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을 담았어야 했다"(강선우 의원) 등의 발언도 쏟아졌다. 지난해 10월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에 시동을 걸고 11월 당원 투표를 통해 후보 공천을 강행한 이낙연 지도부를 향해 책임 통감을 촉구한 셈이다.

앞서 이들 중 50여명은 이날 오전 초선의원 모임을 열고 당의 전반적인 정책결정 과정, 운영방식, 업무관행에 대한 쇄신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친문 등 책임있는 사람들은 이번 선거(지도부 선거)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자신들에게 원인이 있다면 출마를 숙고해봐야 한다" 등의 의견도 상당수 제기됐다. 최고위원 총사퇴라는 배수진을 친 민주당이 진정한 반성없이 친문 등 특정 진영 위주로 차기 지도부를 구성하면 국민이 또다시 등을 돌릴 것이란 경고 메시지도 담겼다.

초선 의원 한 명은 "책임론이 거셌다. 분위기도 많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의 문제제기에 뒤늦은 반성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하지만, 당 지도부를 향해 날선 목소리를 처음 냈다는 점에서 그간 '침묵했던, 눈치봤던 초선들'이 이제야 책임 정치를 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의원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민주당 2030 국회의원 모임에 속한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전용기 의원도 이날 일방적인 검찰개혁을 두고 "오만과 독선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 국민께 피로와 염증을 느끼게 하였음에도 그것이 개혁적 태도라 오판했다"고 사과했다. 특히 이들은 "조국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상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되며 오히려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청와대와도 각을 세웠다. 이들은 "재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을 야당탓, 언론탓, 국민탓, 청년탓으로 돌리는 목소리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의 말과 선택과 행동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이라고 일침을 놨다.

노웅래 전 최고위원 역시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대위원장을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당내 특정 세력의 눈높이로 뽑으면 쇄신의 진정성이 생길 수 있냐"며 "면피성,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될 것이고, 국민이 '아직도 국민을 바보로 보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3선의 도종환 의원을 원내대표 선거 전 '원포인트'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물론 임명 방식에도 쓴소리를 낸 셈이다.

"우리 당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가급적 당내 선거에 나서지 말라"(조응천 의원), "새로운 인물, 새로운 가치, 새로운 노선을 표방할 수 있어야 당을 그렇게 움직여 나갈 수 있다"(박용진 의원), "지금도 당에서 조국 전 장관을 왜 그렇게 지키려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김해영 전 의원) 등 전현직 비주류 의원들 사이에서도 선거 참패 책임론이 쏟아졌다. 참패 책임론이 비온 뒤 폭포수처럼 분출되는 양상이다.

4·7 재보궐 선거 다음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하면서 민주당은 오는 16일 원내대표를, 다음달 2일 당 대표를 선출한다. 당내 친문 인사 가운데 윤호중, 김경협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원내대표를 지냈던 홍영표 의원도 당 대표 출마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권을 두고 정권 말 권력누수를 막고 검찰개혁 등 기존 개혁 과제를 완수하려는 친문 세력과 뼈를 깎는 반성 위에 당의 기조 변화와 쇄신을 외치는 세력간 주도권 다툼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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