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로 공석이 된 검찰 수장의 자리는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윤 총장 사퇴 당시부터 후임 인선은 재보선 이후 본격 진행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1년의 향배가 재보선 결과에 좌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재보선이 끝나면서, 신임 총장 선임 절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법무부는 지난달까지 진행된 대국민 천거 대상자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한편 예비 총장 후보자들에게 인사검증에 필요한 인사검증 동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총장 추천위는 이르면 다음 주 초 첫 회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추천위가 후보자들의 자격을 검토한 뒤 3명 이상의 총장 후보를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면 장관은 이 가운데 1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게 된다. 이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르면 이달 말쯤 새 총장이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신임 총장 인선 절차가 본격화 됐지만 누가 새로운 검찰총장으로 임명될지 예측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여권이 재보선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가시화 되면서 청와대와 여당의 상황이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성윤이냐 아니냐" 좀처럼 풀리지 않는 딜레마
검찰 내·외부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는 역시 이성윤(59·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이 검사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친문' 검사로 불린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로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요직을 빠지지 않고 거쳤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이기도 한 이 지검장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이 지휘하는 사정비서관실의 특별감찰반장을 맡는 등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왔다.
조국 사건으로 윤석열 전 총장이 현 정부와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우자 이 지검장이 최전선에서 방패막이를 자처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수사 때 채널A와 MBC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놓고 본격적인 갈등을 빚기 시작한 뒤 정권과 연관된 사건마다 이 지검장은 윤 전 총장과 대립했다. 문재인 정부에 부담스러운 수사의 템포는 가급적 늦춘 반면 윤 전 총장을 겨냥한 수사에는 수사팀을 채근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전 총장 부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자 적극적으로 수사팀을 다그친 일이 대표적이다. 정권 의도에 절대 반하지 않는 행보만큼이나 청와대와 여당의 신뢰도 단단하다.
정부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면서 입은 '상처'도 만만치 않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신설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 지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진욱 처장의 관용차를 제공하는 등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정부를 무리하게 옹호하다 후배 검사들의 항의에 직면하면서 통솔력마저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비울 경우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는 것도 여권의 고민거리다. 서울중앙지검이 현재 과거사위의 윤중천 보고서 허위 작성과 청와대 허위 보고 의혹 및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무마 의혹 등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민감한 사건들을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성윤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정권 말기로 갈수록 대통령의 검찰 장악력이 약화된 전례를 감안한다면 이 지검장을 반드시 후임 총장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불가피론'도 여권 내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남관, 이성윤 대체재 될 수 있을까? 합리적 성향 구본선 광주고검장 다크호스
여권이 '이성윤은 부담스럽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선택지는 다양해진다. 검찰 내부에서는 조남관(56·24기)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과 구본선(23기) 광주고검장이 떠오르고 있다.
조 차장검사는 전북 남원, 전주고 출신에 노무현 정부 후반기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성윤 지검장과 유사점이 많다. 2009년 5월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하자 다른 검찰인사들이 조문을 주저하던 것과 달리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과학수사부장과 서울동부지검장을 역임한 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대검 차장으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 행보를 이어 온 전력도 이 지검장과 비슷하다.
구본선 광주고검장은 온화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문재인 정부와 검찰 내부 통틀어 큰 마찰이 없었던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조국·박범계 등 전현직 법무부 장관과도 원한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조남관 차장 검사 부임 전까지 윤 전 총장 밑에서 대검 차장검사를 역임하며 대검과 법무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완충작용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추 전 장관이 윤 전 총장 징계를 시도하자 발생한 검란에서 다른 일선 고검장들과 함께 반대 성명을 내놓은 점은 여권 입장에서 껄끄럽다.
대검에서 추미애 전 장관의 검찰개혁의 일각을 담당했던 판사 출신 한동수(54·24기) 감찰부장도 차기 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확률이 크지는 않다는 평이다.
◇내부 보다 외부 인사 선임 가능성 높아... 김오수·양부남 급부상
윤석열·추미애 갈등 과정에서 이리저리 얽히며 상처가 난 검찰 내부 인사보다 외부인사의 선임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오수(58‧20기) 전 법무부 차관과 양부남(59‧22기) 전 부산고검장, 대법관 후보에도 추천됐던 봉욱 전 대검 차장(56·19기) 등이 후보군이다. 이들 모두 윤석열 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선배들인 '올드보이'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인사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했던 김오수 전 차관은 차기 총장 후보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인사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초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보좌해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과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의 최일선에서 보조를 맞춰온 점이 강점이다. 갈등을 고조시키지 않고 주변과 큰 마찰없이 일을 처리해 내는 특유의 친화력은 어느 때보다 갈등이 고조될 수 있는 문재인 정부 검찰의 마지막 1년을 맡기기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관을 역임하면서 검찰 내부의 비판을 감내하고 검찰개혁 정책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는 점은 현 정부에서도 큰 평가를 받는 요소다. 한 때 검찰 내부에서 강한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성윤 지검장이 부각되자 많은 부분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박상기 전 장관이 이번 검찰총장추천위원장을 맡게 된 점도 유리하다.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은 최근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다크호스다. 전남 담양 출신으로 전남대를 나와 검찰 내에서는 '아웃사이더'로 분류되지만 박근혜 정부 때 고검장 자리에 까지 오른 입지 전적의 인물이다. 특히 호남지역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무일 검찰총장 때 강원랜드 수사단장을 맡으면서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는 이유로 대검 김우현 반부패부장과 최종원 전 춘천지검장을 구속 기소하려 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직 검사장 시절 주변의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검찰 내부 비위를 척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의 적임자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