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의 3단 고음으로 가창력 발휘와 화제성을 모두 잡고는 '너랑 나'와 '분홍신'으로 정상에 오른 아이유는 싱글 '하루 끝', 참여 곡 '봄 사랑 벚꽃 말고'는 물론 기존 곡을 자신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나의 옛날이야기'까지 줄줄이 히트시켰다. 사실상 '좋은 날' 이후 아이유의 음악과 커리어를 거론하면서 '전성기'와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내는 음악마다 엄청난 대중성을 확보하며, 팬을 늘리고, 평단의 평까지 잡아낸 그에게.
남들의 눈에는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때, 아이유는 첫 슬럼프를 겪었다. '어린 나이에 잘한다'라는 칭찬을 밥 먹듯 들으면서 '그럼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의문이 생겼다. 자꾸만 실제보다 더 좋게 포장되는 것 같고 거품이 생긴 기분(2018. 10. 27. KBS2 '대화의 희열')이었다. '초라해도 마음 편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프로듀싱을 시작했다.
그 첫 결과물이 스물셋에 나온 미니 4집 '챗셔'(CHAT-SHIRE)였다. 여기에 스물다섯에 나온 정규 4집 '팔레트'(Palette), 스물여덟에 나온 '러브 포엠'(Love poem)과 '에잇'을 묶어 '나이 시리즈'라 부른다. 지난달 25일 발매된 '라일락'(LILAC)은 아이유가 무려 4년 만에 내놓는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20대를 기념하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더 큰 기대를 모았다. 일찍부터 화려한 인사를 예고했던 것처럼, '라일락'은 눈부시고 풍성하다.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더블 타이틀곡을 선보였다. 뮤직비디오 속 흩날리는 꽃잎의 이미지와 꼭 맞는 경쾌한 '라일락'과 아이유 아버지의 픽(pick)인 동시에 아이유가 래핑에 도전한 '코인'(Coin)은 장르도, 가사에 담긴 정서도, 비주얼 콘셉트마저 상반된다. 두 곡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서로 다른 강점으로 청자를 매혹하기 때문이다.
희열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감각에 집중해 사랑을 풀어낸 '플루'(Flu), 담담하게 마음을 울리는 '봄 안녕 봄', 누군가의 별남을 모남이 아니라 특별함으로 읽어낸 사랑스러운 시선의 '셀러브리티'(Celebrity), 딘과의 협업으로 눈길을 끈 '돌림노래', 프로듀서 우기와 힙합 뮤지션 페노메코와 협업한 '빈 컵'(Empty Cup), 나를 사랑하지 못해 맘이 가난했던 과거를 지나 헤맬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게 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아이와 나의 바다', 물속에 있는 듯 재치있게 표현한 발랄한 트랙 '어푸'(Ah puh).
'가수' 아이유의 13년 전사를 전혀 모르고, 아예 관심 없더라도 '라일락'이란 앨범을 듣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번엔 또 무엇을 들려주고 보여줄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신기한' 가수여서, 기대치도 기준도 높아졌을 법한데도, 아이유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에게 자신의 '제작 의도'까지 설득시킨다.
"귀가 즐겁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주 명쾌한 앨범"(2021. 3. 23. 'W 코리아')을 내고 싶었다는 아이유의 바람은 적중했다. 타이틀곡 '라일락'은 각종 음원 사이트 1위를 전부 차지하는 '퍼펙트 올킬'을 달성했고, 발매 3주차임에도 수록곡까지 차트에서 건재하다. 팬덤 크기의 척도로 꼽히는 발매 첫 주(초동) 판매량도 27만 장을 훌쩍 넘기며 신기록을 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음원 사이트 멜론의 24 Hits(7일 오전 1시 기준) 100곡 중 아이유의 곡은 '라일락'을 포함해 총 '셀러브리티', '코인', '내 손을 잡아', '봄 안녕 봄', '플루', '아이와 나의 바다', '어푸', '돌림노래', '에잇', '블루밍'(Blueming), '에필로그', '빈 컵', '마음을 드려요', '러브 포엠', '봄 사랑 벚꽃 말고'까지 16곡에 이른다. 최근작인 정규 5집 수록곡 외에도 2020년, 2019년, 2014년, 2011년 등 발매 시기와 무관하게 사랑받고 있다.
"몹시 예민"하다며 "뭐게요, 맞혀봐요"라고 도발하던 스물셋, "날 좋아하는 거 알아"와 "날 싫어하는 거 알아"를 오가면서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고 한 스물다섯, '영원한 젊음'(forever young)을 들어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다고 한 스물여덟을 지나, "내 맘에 의문이 없"다는 스물아홉.
아이유는 그동안 부지런히 '오롯한 나'와 여러 꾸러미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20대의 끝자락에 선보인 앨범의 "탄성 속에 기쁘게 이별"한다는 마지막 인사 역시 모순이 아니었다. 마지막 곡에서는 "이 밤에 아무 미련이 없"기에 "깊은 잠"에 드는 아이유는 그 평온한 잠에서 어떤 꿈을 꾸었는지까지 나누겠다며 "들어줄 거지요?"라고 물었다. 물론, 기꺼이 그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