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폭력적 통제 용인하는 대학운동부 관행 개선해야"

운동부 운영 大 9곳 직권조사…"심부름 강요 등 일상통제 여전"
선수 46% "운동능력 향상과 무관", 36% "그만두고 싶어져"
"선수들 자기결정권 등 헌법 상 인권침해…규제·예방책 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
대학 내 운동부에서 외출 금지, 심부름 강요 등 '일상적 통제'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폭력적 통제가 지속될 경우 선수들은 직접 폭력행위를 경험하는 것과 유사한 악영향을 받는다"며 이같은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6일 인권위는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대학 운동부 선수 5500여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들어 "대학 운동부 내 위계적·강압적 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적 통제 관행을 규제·예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 당사자뿐 아니라 관리·감독자에 대한 징계근거 등을 마련할 것을 대한체육회장과 직권조사 대상 대학교 총장,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장 등에게 권고했다.

교육부 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는 각 대학이 인권침해 구제기구를 적절하게 운영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등을 지원할 것, 대학 지원에 있어 인권침해 여부 등을 평가한 내역을 반영토록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인권위는 폭행, 성희롱 등 대학 운동부 소속 선수들의 진정을 개별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행위들이 개인들의 일탈이 아니라 운동부의 엄격한 위계문화와 관습이 근본적 문제라 보고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인권위는 진정사건이 접수된 대학교와 전문운동선수 100명 이상, 운동부 10개 이상의 대규모 운동본부가 있는 대학교 9곳을 대상으로 유사 피해사례 조사 및 설문·면담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설문에 응한 대학 운동부 선수 총 258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선수들은 대학교 운동부 문화에 대해 '개인보다 운동부의 상황이 우선된다'(38.4%)고 집단주의 문화를 문제로 꼽았다. 또 △'운동 관련 지시나 지도에 대한 복종이 중시된다'(31.4%) △'경기결과나 승리를 강요하는 문화가 중시된다'(26.4%) △'운동선수의 강인함 등이 중시된다'(20.5%) 등의 응답(중복)도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의외로 '선후배 간 위계·서열이 엄격하다'는 항목은 14.3%에 그쳤지만 인권위는 저학년일수록 휴학률이 높은 점(1학년 20.2%·4학년 8.7%) 고학년이 될수록 위계 중심에 가까워져 이같은 문화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실제로 1학년 선수들은 운동부에서 운동과 무관하거나 없어져야 할 문화로 '선후배 간 위계·서열이 엄격한 것'(46.1%)을 첫손에 꼽은 것으로 파악됐다.

선수 절반 이상은 신체폭력·언어폭력·성폭력·기합 같은 행위뿐 아니라 외박·외출 제한(71.3%), 심부름(70.9%), 휴대전화 제한(67.1%), 두발 제한(64.7%) 등에 대해서도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사대상 선수 중 38%는 외박·외출 제한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37.2%는 두발 길이·복장 등을 제한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선배들의 심부름이나 빨래·청소 같은 노동을 강요받은 선수들도 32.2%에 달했다.

인권위는 2년 전 실시한 대학 실태조사에서 외박·외출 제한을 겪은 선수가 25.9%, 심부름이나 빨래·청소를 강요당했던 선수들이 28.5%였던 점을 고려할 때 "직권조사 대학 선수들의 상황은 지난해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상활동에 있어 통제 강도가 더 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직권조사 대학 선수들은 이처럼 일상행위를 통제하는 가해자가 대부분 선배 선수(65.6%)거나 지도자(50.3%)라고 지목했다. 발생 장소는 이들이 주로 생활하는 숙소(67.5%)와 운동하는 곳(49.5%)이 꼽혔다. 이 역시 지난 2019년 인권위 전수조사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다.

선수들은 운동부에서 보편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적 통제가 '불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수 46%는 "운동부 운영·운동능력 향상이나 운동 수행 등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직권조사 대학 선수 62.4%는 '왜 해당행위를 당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고, 35.7%는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31.2%는 짜증과 모욕,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느꼈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인권위는 이러한 통제가 성인인 대학생 선수들의 자기결정권과 헌법 상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폭력적 통제를 통해 일상적이고 빈번하게 선후배 간, 혹은 지도자와 선수 간 위계가 확인된다"며 "위계 우위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통제를 행하면서 폭력 자체에 대해 둔감해진다. 이로 인해 위계 우위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폭력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에 다다르는 경우가 생기고, 실제로 심각한 폭력행위를 행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사에 따르면, 대학 운동부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력적 통제에 대해 대학·정부·체육 관계기간 모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고 관련정책도 체계적이지 못하다"며 "이는 폭력적 통제에 대한 관계기관이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인권센터 등 대학 내 구제체계의 인력과 예산 등 자원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폐쇄적인 운동부 문화와 상시적인 합숙생활로 인해 선수들이 비밀유지에 대한 신뢰를 갖고 현존하는 구제체계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짚었다.

이에 따라, "대학교 내 위계적 문화와 폭력적 통제를 예방,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한체육회·스포츠윤리센터 등 관계기관이 역할이 중요하다"며 "직권조사 대상 대학교는 운동부 기숙사 운영 시 선후배 간이나 지도자에 의해 운동부 선수의 사생활 침해나 부당한 행동 통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생활규정 등을 정비하고 운동부 전용 기숙사 운영에 대한 검토와 기숙사 생활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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