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국과의 2+2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이후 중동 국가 순방, 아세안 4개국 외교장관 초청 회담, 한중 외교장관 회담 등 보름 가까이 숨 가쁘게 이어진 광폭 외교행보의 일환이다.
직접 만나 5시간 가까이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지역현안 국제 이슈까지 폭넓게 대화했던 한중 외교장관 회담과는 달리 1시간 동안의 전화 회담이었는데 두 사람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 최근 멀어진 중일관계의 단면을 보여줬다.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중일 외교장관 전회 회담 내용을 보면 왕이 부장은 모테기 외상에게 "일본이 중국의 발전을 보다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보기를 바란다"면서 "특정 초강대국의 의지가 국제사회를 대표할 수 없고, 초강대국을 따르는 소수의 국가들이 다자 규칙을 독점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왕이 부장이 말한 초강대국은 미국이고, 초강대국을 따르는 소수 국가들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힘을 합치려는 서방 국가와 일본, 호주 등 쿼드 소속 국가들로 보인다. 결국 본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도에서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왕이 부장은 일본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중국과도 평화우호조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이 조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용적 분야의 협력, 특히 도쿄 하계올림픽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서로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내년에 중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문화·스포츠 교류를 활성화할 것도 제안했다.
이어 일본은 중국과 대화를 강화하고 차이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양국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축하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한다며 도쿄·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하자고 화답했다.
중일 양국 외교장관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타오 문제와 해경법 등에 대해서도 이견을 나눴지만 사안의 성격상 입장차를 좁히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수상 재임 당시 원만했던 중일 관계는 최근 여러 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신장 문제에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홍콩에 대해서는 중국을 비판하는 등 한국보다 선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전략에 적극 호응하면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의 부속국으로 전락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