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직원들에게 이미 5차례나 경찰서장 표창을 수여한 경찰은 금융기관 종사자의 적극적인 대응이 피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ATM 안내 음성 듣고 보이스피싱 직감한 청경
지난달 15일 부산 사상구 IBK기업은행 학장동지점 자동화기기(ATM) 코너.
한 남성이 입금 중인 기계에서 "고객님의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누르신 후 확인 버튼을 눌러주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근처를 지나다가 이 음성이 한 기기에서 반복해 나오는 것을 들은 청원경찰 김재혁 계장은 순간 보이스피싱 범죄를 직감했다.
은행 측에 따르면, ATM기 이용자는 100만원 이하 금액을 무통장입금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을 입력해야 한다.
통상 보이스피싱범들은 무통장입금을 이용해 가로챈 금액을 송금하기 때문에, 피해자들로부터 수거한 돈을 100만원 단위로 나누어 반복 입금하는 게 특징이다.
평소 교육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김 계장은 그 즉시 다른 직원들에게 "보이스피싱 범죄가 의심된다"고 전파했다.
이에 직원들은 해당 기기 거래 내역을 확인해 반복 입금이 이뤄진 사실을 파악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범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 기기 처리시간을 지연시키는 기지도 발휘했다.
이렇게 검거한 보이스피싱 수금책 A씨는 경찰 조사결과 2차례에 걸쳐 1840만 원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미처 송금하지 못한 170만원은 회수해 피해자에게 돌아갔다.
◇은행원이 고객 의심하기 쉽지 않지만…"보호가 더 중요"
IBK기업은행 학장동지점에서 보이스피싱범을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A씨를 검거하기 불과 5일 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10차례에 걸쳐 1억 4천만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송금한 수금책 B씨를 붙잡았고, 피해액 2100만 원을 회수했다.
이들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을 모두 합하면 7억 7855만 원에 달하며, 이들을 검거해 피해자에게 다시 돌아간 액수는 8116만 원이나 된다.
해당 지점 직원들은 지속적인 교육에 더해 보이스피싱 예방을 독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비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은행 학장동지점 윤성희 부지점장은 "반복 교육을 통해 직원들이 보이스피싱 의심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자 해야 할 역할을 숙지하고 있는데, 이런 교육은 어느 은행이든 하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직원들이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고객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물어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지점에서는 직원들에게 '영업도 중요하지만 고객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하고 있고, 보이스피싱 관련 질문을 받은 고객이 항의하더라도 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예방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융기관 신고로 보이스피싱 검거·예방 사례 급증
부산 사상경찰서는 보이스피싱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공로로 해당 은행 지점에 모두 5차례 경찰서장 표창을 수여했다.
윤 부지점장과 조호완·박민서 대리가 각 1건씩 표창을 받았고, 청원경찰 김재혁 계장은 2건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지난달 보이스피싱 수금책을 검거한 2건에 대해 부산 사상경찰서는 부산경찰청에 부산경찰청장 표창 수여를 심사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금융기관 종사자 신고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거나 범인을 검거한 사례는 지난해 1분기(1~3월) 9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47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경찰은 금융기관 종사자를 상대로 예방 교육을 펼치는 한편,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신속한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경찰 표창과 칭찬도 영예로운 일이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는 직원들에게는 고객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가 가장 큰 보람이다.
윤 부지점장은 "창구에서 2900만 원을 송금하려다 직원 덕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한 남성 고객은 어렵게 마련한 사업자금을 날릴 뻔했다며 울먹이면서 감사 인사를 건넨 적도 있다"며 "잃을 뻔했던 돈을 지킨 고객들로부터 '믿음이 간다', '거래하길 잘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우리가 정말 좋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