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컨테이너에서 보낸 2년…"여기 아직 사람이 살고 있어요" (계속)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에서 여전히 임시컨테이너 생활을 하는 정희훈(46)씨가 '2019년 4월 4일 대형산불' 기억을 더듬었다. 흘러간 시간이 무색하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산림 2872ha가 화마에 휩쓸리고 2명 사망, 1490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고성·속초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벌써 2년이다. 임시컨테이너에서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산불 발생 이후 삶의 터전으로 복귀하지 못한 이재민들이다. 고성군에서는 이재민 54세대 108명이 여전히 임시컨테이너에서 머물고 있다.
건강을 잃은 건 정씨 아내뿐만이 아니다. 정씨의 어머니는 패혈증으로 작년에 숨졌고, 정씨의 장모님은 급성 대장암에 이어 암이 복막으로 전이되면서 건강이 더 악화했다고 한다. 하루 내내 산불 이야기만 하다 돌아가셨다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정씨의 표정에 깊은 슬픔이 담겼다.
"작년 5월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에서 산불이 발생했는데, 저희 어머니 산소가 그 부근이어서 혹여 불이 산소로 번질까 걱정돼 아내와 함께 달려갔어요. 잠도 못 자고 차 안에서 불길이 잡히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왔어요. 이후 며칠 동안 계속 마음이 진정되지 않더라고요.."
속초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정씨 부부는 생계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산불 발생 이후 빠른 해결을 위해 생계를 잠시 접고 피해복구에 몰두한 탓이다. 하지만 배상문제가 길어지면서 최근에서야 다시 생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판매업으로 업종 자체를 바꾸면서 다시 자리를 잡느라 허덕이고 있다.
"산불이 발생하고 그해 12월 간암수술을 했어요. 간을 70%25 정도나 떼어낸 큰 수술이었어요. 의사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해서 마음의 준비도 했었는데 살았어요. 그런데 마약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통증이 너무 심하니까 약에 의존해서 살아요. 무허가 땅이라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몸은 몸대로 망가져서 일도 못 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차씨가 전 재산이라며 주섬주섬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는 단돈 1만 2천 원. 꼬깃꼬깃 접은 돈을 힘겹게 쥔 손이 가냘프게 떨렸다. 차씨는 기초수급비로 받는 50만 원 중 3~40만 원을 병원비와 약값에 쏟고 있다면서 "마음껏 라면이라도 먹고 싶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처럼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 먹지 못해요. 당장 약을 먹어야 하니까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요. 빠른 시일 내에 복귀할 수 있게 해준다더니 이제는 아무도 신경을 안 써요.. 저는 갈 데도 없잖아요. 무허가 땅이어도 산불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계속 살았을 텐데.. 내 잘못으로 인한 화재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스트레스받죠."
산불 피해로 한순간에 이재민이 된 이들은 길어지는 임시컨테이너 생활에 불안함과 억울함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