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달 중순 쯤 발표하려고 했던 '가계 부채 선진화 방안'은 이른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여파로 이번달 중순쯤 발표될 전망이다. 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돈 빌리는 개인 별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40%로 일괄 적용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DSR은 대출 심사 때 개인의 모든 대출에 대해 원리금 상환 부담을 계산하는 지표다. 주택담보대출 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카드론 등을 포함한 모든 금융권 대출 원리금 부담이 반영된다. 즉, 개인 상환 능력에 맞게 대출이 나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같은 금융위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갑자기 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당의 정책위의장이 기자간담회까지 열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 기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제공되는 각종 혜택의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8월 2일 발표한 부동산 정책의 뼈대인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금융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첫 신호이다.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우대 혜택을 현재보다 높이고, 소득 기준이나 주택 실거래가 기준 등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무주택 가구가 투기지구·투기과열지역에서 6억원 이하 주택을 구매할 때 적용받는 LTV·DTI는 40%다. 이때 무주택의 소득기준은 부부합산 연소득이 8천만원 이하이고 생애 최초 구입자는 연소득 9천만원 이하였다. 홍 정책위의장은 KBS라디오에 출연해 "지금도 다른 분에 비해 무주택자, 최초 구매자 같은 경우에는 10% 정도 더 받는데, 그것을 조금 더 상향하는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까지 할 지는 저희들이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와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책의 실효성이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의 가계 대출 규제 가이드라인은 4월에 나오는데 민주당은 규제 완화 시점을 6월 부동산 중과세 시행 등 시장과 가계 부채 상황 등을 보며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의 방침대로라면 대출 규제를 다 발표하고 난 뒤에 이와 정반대로 일부 규제를 수정하겠다는 것이어서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당정이 엇박자를 내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민주당의 규제 완화와 관련해) 제대로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 규제를 한다고 해서 그에 따라 세팅을 다 했는데 또 완화한다고 하면 그 방침대로 세팅을 다시 해야하는 것"이라면서 "현재도 대출 규제 관련 상당히 복잡해서 시장에서 혼란스러워하는데 더욱 혼란스러워질 게 뻔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실수요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것은 맞다"면서도 "애초에 시장 말을 들었으면 될 일을 그때는 듣지도 않다가 갈지자 행보를 하니 답답하다. 정치 논리에 금융당국도 금융권도 다 휘둘리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경제 이슈들이 정치 이슈로 넘어가면서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경제 정책이 결정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경제 정책 방향과 여론이 충돌하는 상황은 항상 생기는데, 이런 상황에서 경제 논리나 시장 논리가 아니라 여론에 의해 그 방향성이 결정되는 게 합리적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여론을 무시할 수 있는 정책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책이 여론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이 있고 안정적인 사람에게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준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조였다 풀었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특히 성 교수는 "일반인들도 주택을 살 때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듯 주택 관련 대출 의사 결정은 '라이프 사이클'을 보고 하는 의사 결정이어야 한다"면서 "자꾸 부동산 따라, 정치적 이벤트에 따라 정책 의사 결정을 바꾸지 말고 일관성과 원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