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장관은 왜 '샤먼'에 가나…회담 장소의 외교학

3일 한중 장관회담, 대만 인접 도시에서 개최…"왜 하필 여기서" 의구심
같은 날 서훈 실장은 미국서 한미일 협의…미중 갈등 속 외교적 주목
왕이, 한중회담 전 인근 도시에서 타국과 회담…샤먼 낙점은 韓 입장 반영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박종민·황진환 기자
오는 3일 열릴 한중 외교장관 회담 장소가 모종의 외교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회담을 갖는다.

샤먼의 지리적, 역사적 의미는 독특하다. 샤먼은 대만과 불과 200여km 떨어진 항구도시로 역시 대만 땅인 진먼다오(金門島)와는 불과 4km 거리다.

샤먼과 진먼다오 간에는 1950년대 후반부터 약 20년 동안 포격전이 이어졌다. 중국-대만 양안 갈등을 상징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현 시점에는 대만, 홍콩, 신장, 티벳 등 이른바 중국의 핵심이익을 놓고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최전선 가운데 한곳이다.

중국 샤먼. 스마트이미지 제공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넓디넓은 중국에서 왜 하필 여기에서 하는지 의구심이 들 법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서훈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등 한미일 안보실장들이 미국에서 만나는 날이다. 회동 장소 역시 의미심장하게도 미국 해양 패권의 산실인 해군사관학교다.

미국과 중국이 그리는 전략적 경쟁의 큰 그림 속에 한국이 속절없이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선 정의용 장관의 첫 해외 출장지가 중국인 점을 지적하며 미국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결국, 정 장관이 왜 굳이 지금 그곳에, 그것도 왜 미국보다 먼저 방문을 해서 외교적 입지를 스스로 좁히느냐는 비판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 중 상당수는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의용(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리셉션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일단, 정 장관이 중국을 먼저 찾는 것은 맞지만 외교장관 회담은 미국이 엄연히 1순위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2+2 회의' 참석차 방한하지 않았다면 정 장관의 첫 해외 일정은 당연히 미국이었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일치된 견해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장이 샤먼이 된 것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왕이 장관은 한중회담에 앞서 같은 푸젠성의 난핑(南平)에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과 회담을 갖는다. 이들 국가와의 지리적 인접성 등이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중국 측은 당초 한중회담도 난핑에서 연이어 개최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한국으로선 양안관계와 관련한 '오해'는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별로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다른 국가들에 이어 회담을 기다리는 '줄서기 외교'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박종민 기자
결과적으로 회담장을 샤먼으로 잡은 것은 오히려 우리 정부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왕이 부장으로서도 샤먼까지 이동하는 수고를 하게 됐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샤먼은 (과거와 달리) 현재 양안 간 교류와 경제협력의 중심도시"라며 지역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억측을 경계했다.

물론 회담 일정을 아예 늦춤으로써 장소를 수도 베이징으로 정하거나 정치적 부담이 없는 다른 지역을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러 외교장관회담을 구이린(桂林)에서 한 것에서 보듯 베이징에 대한 코로나19 방역은 매우 엄격하고, 가까운 시일 내 다른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은 정의용 장관이 지난 31일 내신기자 브리핑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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