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회담을 갖는다.
샤먼의 지리적, 역사적 의미는 독특하다. 샤먼은 대만과 불과 200여km 떨어진 항구도시로 역시 대만 땅인 진먼다오(金門島)와는 불과 4km 거리다.
샤먼과 진먼다오 간에는 1950년대 후반부터 약 20년 동안 포격전이 이어졌다. 중국-대만 양안 갈등을 상징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현 시점에는 대만, 홍콩, 신장, 티벳 등 이른바 중국의 핵심이익을 놓고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최전선 가운데 한곳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서훈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등 한미일 안보실장들이 미국에서 만나는 날이다. 회동 장소 역시 의미심장하게도 미국 해양 패권의 산실인 해군사관학교다.
미국과 중국이 그리는 전략적 경쟁의 큰 그림 속에 한국이 속절없이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선 정의용 장관의 첫 해외 출장지가 중국인 점을 지적하며 미국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결국, 정 장관이 왜 굳이 지금 그곳에, 그것도 왜 미국보다 먼저 방문을 해서 외교적 입지를 스스로 좁히느냐는 비판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 중 상당수는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장이 샤먼이 된 것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왕이 장관은 한중회담에 앞서 같은 푸젠성의 난핑(南平)에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과 회담을 갖는다. 이들 국가와의 지리적 인접성 등이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중국 측은 당초 한중회담도 난핑에서 연이어 개최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한국으로선 양안관계와 관련한 '오해'는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별로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다른 국가들에 이어 회담을 기다리는 '줄서기 외교'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샤먼은 (과거와 달리) 현재 양안 간 교류와 경제협력의 중심도시"라며 지역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억측을 경계했다.
물론 회담 일정을 아예 늦춤으로써 장소를 수도 베이징으로 정하거나 정치적 부담이 없는 다른 지역을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러 외교장관회담을 구이린(桂林)에서 한 것에서 보듯 베이징에 대한 코로나19 방역은 매우 엄격하고, 가까운 시일 내 다른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은 정의용 장관이 지난 31일 내신기자 브리핑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