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게 재밌었어요. 남들은 뱃일이 힘들다고 하는데, 하루 일하고 나면 '오늘은 얼마 벌겠다' 딱 계산이 나오니까. 그런데 그날 이후 일을 할 수 없었어요." _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진도 어민 이옥영
"참사 다음 날부터 교실을 들어가기 힘들었어요. 배에 아이들과 내가 있고 배가 침몰한다면, 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버티다 보니 같이 하잔 선생님들이 생겼어요. '정말 버티는 게 중요하구나' 했죠." _중학교 교사 조수진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2014년 4월 16일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이들이 당시 4월에 대한 기억과 함께 각자가 지닌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작품이다. 세월호 7주기가 되는 4월을 앞두고 만난 주현숙 감독은 왜 그날의 목격자인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했는지, 이제 아픔과 기억을 넘어 어디로 향해야 할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도 아니고 유가족도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그날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참사의 목격자들 역시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당사자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당신의 사월'이 그동안 세월호를 다룬 영화와 다른 점이다.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 바깥에 존재해 왔다고 여겨진 사람들을 통해 점차 하나의 테두리 안으로 모이게 된다.
"자식을 잃은 사람보다 내가 더 슬플까 하는 슬픔의 위계 때문에 감히 이야기를 못 하는 게 있어요. 슬픔의 위계를 만들어서 누군가만 너무 슬프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을 거기 가두는 게 돼요.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그들은 나랑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안쓰럽고 불쌍하고 미안하게만 생각하게 되고, 너무 심하면 외면하고 싶어져요. 너무 슬프고 힘든 건 보기 싫으니까요.
세월호가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이걸 내가 이야기해도 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해보면서 오히려 마음의 위안이 됐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죠."
그렇게 주 감독은 평범한 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던 이야기를 끌어올렸다. 그가 영화를 통해 건든 것은 2014년 4월 16일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생겨난 트라우마다. 유가족이나 생존자 등 직접적인 피해자들만이 트라우마의 대상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날은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주 감독은 "그동안 제대로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 되짚어 보고 그다음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마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주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말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실체 없이 두루뭉술하게 흩어졌던 감정도 선명해졌다. 잠시 잊었던 것 같아서, 멀어진 것 같아서 미안하기만 했던 마음은 다시 함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먹먹한 게 처음엔 유가족에 대한 연민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세월호는 그냥 제 일이더라고요." _카페 사장 박철우
"너무 미안하면 멀어지잖아요. 그러니 너무 미안해 하지 말고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면 좋겠어요." _인권 활동가 정주연
주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의 사월'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영화가 일종의 매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7년간 트라우마가 트라우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것도, 세월호를 두고 지겹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다.
주 감독은 "아우슈비츠에 관한 영화가 아직도 나오지만 지겹다고 하지는 않는다. 성수대교 이야기도 아직까지 나온다. '벌새'가 나왔고, 많은 사람이 봤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왜 지겨울까? 진영 싸움으로만 봐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며 "그러지 말고 우리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러한 사회의 시스템을 온전하게 바라보려면 우선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어떤 충격이 있었는지, 어떤 것에 대해 실망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생각도 들어요. 광주항쟁처럼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어떤 절차를 잘 밟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해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사건 자체가 너무 컸기에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봐요."
상처와 고통을 마주한다는 것은 아픔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용기와 의지의 시작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7년 내내 세월호만 생각할 수는 없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씨앗마다 발화하는 시기가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심는 때도 다르고 발화하는 때도 다르죠. 한동안 리본을 못 달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다들 일상을 일궈가는 사람들이기에, 지금 할 수 있으면 지금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리본이 어떤 아픔의 상징, 잊지 않겠다는 미안함의 상징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하고 있고, 조금만 더 기운을 내볼까 하는 의미가 덧대어지면 좋겠어요. 우리는 잘하고 있어, 기억하고 있으니까 무언가 할 수 있을 때 할 거라는 그런 다짐, 서로에 대한 안부 같은 메시지를 주는 아이콘이 됐으면 해요."
주 감독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살아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세월호도 충분히 함께 기억하고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엔딩 크레딧 맨 마지막 '그리고 당신'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함께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인사이자, 그날의 목격자들에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기 위함이다.
"제가 작업하면서 정말 많은 분께 고마웠어요. 만났던 분들에게 감사하고, 장벽을 넘어서 이 영화를 본 분들에게도 정말 고마운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당신들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요. 덕분에 지금까지 잘 버텼고 앞으로도 부탁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꼭 엔딩 크레딧까지 봐주시면 좋겠어요. 마지막까지 보면 '당신'을 위한 선물이 있거든요."(웃음)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