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젖먹이‧임산부도 죽였다…제주4‧3 아동학살 '참극' ②제주4‧3 학살터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③"마구 때리고 고문"…소녀에게 제주4·3은 '악몽'이었다 (계속) |
지난 7일 서귀포시 강정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정순희 할머니(86)는 70여 년 한 맺힌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 할머니는 "그때 가만히 내버려 둬시믄, 아프지도 않고 죽을 건디"라고 한탄했다. 지금은 여든이 넘은 '12살 소녀'에게 들이닥친 4‧3은 무시무시한 악몽과 같았다.
◇마구 때리는 것도 모자라…전기‧물고문까지
4‧3 당시 정 할머니는 12살 소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문을 당했다. 1948년 11월, 군인들의 지시로 17살 오빠(정동호)가 친구들과 함께 무장대가 신작로에 쌓은 담을 허물러 갔다가 행방불명되면서 '도피자 가족'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훗날 전해 듣게 됐지만, 오빠는 담 치우러 가는 길에 군인들로부터 매질과 총격을 당하는 과정에서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킥킥' 대며 장난치던 친구를 때린 군인에게 "아이들인데 웃을 수도 있지 않냐"고 대들었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군‧경은 정 할머니를 강정초등학교 인근 곡식창고로 끌고 가 한 달간 '오빠가 어디에 있느냐'고 추궁하며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일삼았다. 당시 15살이었던 언니(정옥희)도 법환지서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또 어느 날에는 고춧가루 섞인 물을 입과 코에 들이붓는 거라. 내가 '콱' 하고 기절하면, 쇠꼬챙이로 입을 벌리게 해서 또 고춧가루 물을 들이부어. 이 짓을 반복했어. 내가 12살 때부터 앞니가 없어. 완전 노리개라 노리개…."
◇세 살배기 아동 돌에 수차례 메쳐 죽이기도
4‧3 당시 군‧경은 다른 아동을 상대로도 몽둥이질 등 가혹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폭도'로 규정지은 사람들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학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제주시 조천읍 북촌초등학교에서 기관총 사격 직후 세 살배기였던 故 고영택 군이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리자, 한 군인이 시끄럽다며 몽둥이로 머리를 가격했다.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굴 학살 과정에서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1949년 1월 16일 경찰은 굴속에 숨어 있던 납읍리 주민 29명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세 살배기 아동을 메다쳐 죽였다.
당시 애월면 직원으로 강제 동원돼 학살 현장을 목격한 故 임병모 씨는 생전에 "거의 아기엄마들이야. 부녀자들. 전부 쏴 버렸는데. 젖먹이가 있었어. 한 순경이 그 아기의 양다리를 두 손으로 잡아가지고 돌에 몇 차례 메쳐 죽였어"라고 증언했다.
◇한평생 고문 후유증…12살 소녀 삶 앗아가
정순희 할머니는 군‧경의 모진 고문에도 살아남았지만, 한평생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외상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고문에서 풀려난 뒤인 1948년 12월 17일 서귀포시 강정동 '메모루 동산'에서 어머니(임두생)가 총살당하는 것을 강제로 지켜본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고문받았던 거 생각하믄 지금도 밤에 잠을 자질 못 해. 그 생각만 하당 날이 밝아. 몸이 안 아픈 데가 어서(없어). 손목의 혈관도 다 끊어져서 욱신욱신 거려. 4‧3 말만 해가믄 신경이 막 올라와…."
정 할머니의 사연은 시로도 남겨져 있다. 시인이기도 한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의 <소녀와 쥐와 고양이와>라는 시다. 시 속에서 12살의 정 할머니는 곡식창고에 갇혀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도 어머니를 애타게 찾고 있다.
'그들이 긴 쇠붙이를 갖다 댈 때마다 / 내 몸은 찌륵 찌륵 오그라졌어 / 한 밤을 보내고 또 보내면 엄마가 올까 / 어디서 어머니 목소리 들렸어 / 울지마라 / 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