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는 29일 핵심 참모였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단칼 경질'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김 실장은 이날 오후에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즉각 이호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교체됐기 때문이다.
30일에는 후임 경제수석비서관과 기획재정부차관 인사를 곧바로 단행했다. 경제라인 교체에 빠르게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조국에 "의혹만으로 낙마 안돼"…김상조는 보도 하루만에 경질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사의를 표했던 김 실장에 대해서만큼은 교체를 미뤘다. 재난지원금 지급과 한국판 뉴딜 정책 설계 등을 위한 선택이었다.
사퇴를 통한 분위기 반전이라는 정무적 판단보다 정책 실행을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전형적인 인사스타일이기도 했다.
이달 초 LH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던 변창흠 국토부장관에 대해서도 경질 모양새를 취하긴 했지만, 사표 수리는 미뤘던 문 대통령이다. 당시에도 문 대통령은 2.4 공급대책의 실행을 우선순위에 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에는 긴 침묵 끝에 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장관과 노 전 실장을 둘러싼 교체론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의 태도는 같았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자르기보다는 자신이 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 실장의 '전세금 인상 논란'에서 불법은 없었다. 예금이 14억원이나 있었음에도 목돈 마련을 위해 전월세 상한제 실행 이틀 전 전세금을 올렸다는 변명이 궁색했지만 사퇴할 정도는 아니란 시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김 실장을 단칼에 경질했다. 기존의 문 대통령의 스타일과 달리 '경질'되는 모양새를 전혀 피하지 않은 것이다.
한 여당 고위관계자는 김 실장 경질에 대해 "그것이 지금 딱 우리 여권의 분위기"라고 한마디로 표현했다. 부동산 정책 실기에 대한 분노가 더 이상 빌미를 줄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반등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의 하락은 막아보려는, 국면전환을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를 의식한 발빠른 행보로 보기도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재보궐 선거보다 이대로 가다간 정권 재창출도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나온다.
이런 위기 의식은 이례적으로 생중계된 29일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발언에서도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국민들의 분노와 질책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또 "우리는 손대지 못했다"라거나 "의지가 부족했다"는 반성의 표현들이 이어졌다. "야단"이나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매도 매우 아프다"는 표현도 썼다.
문 대통령은 지난 신년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부동산 투기에 역점을 두었지만 결국 부동산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인정하기도 했지만, 반성을 내놓기는 처음이다.
노 전 실장은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부동산 적폐 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문 대통령께서 화가 많이 났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독한 모습으로 위기 국면이 수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공급정책과 시장 안정에 대한 가시적 성과 없이 투기 때려잡기 만으로는 성난 부동산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여당이 2.4 공급대책 후속 대책과 함께 부동산 세제 손질과 대출 규제 완화 카드를 만지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