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신작 라이선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2막. 7개의 계단식 무대를 누비며 쉴새 없이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던 배우들에게 잠시나마 쉴 틈이 주어졌다. 이야기 전개상 자연스럽게 무대 바닥에 앉는 장면인데, 배우들이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멀어진 팬데믹 시대이지만, 한국 초연하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배우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숨소리를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 객석을 무대의 일부로 만드는 '이머시브 씨어터' 작품인 덕분이다.
관객들은 공연장 내부로 들어서자 "와"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빨간색 카펫이 깔린 7개의 곡선 무대가 자리잡은 가운데, 무대 사이 공간에 일명 '코멧석'을 설치했다. 덕분에 관객은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 무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오케스트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도 반갑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오케스트라는 무대 왼편에 모여 있다.
그레이트 코멧은 원작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2권 5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룬다. 나폴레옹 침공으로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인 1812년 모스크바가 배경이다. 부유한 귀족이지만 삶에 회의를 느끼고 무기력하게 사는 '피에르', 전쟁에 참전한 약혼자 '안드레이'를 기다리는 순수한 여인 '나타샤', 그런 나타샤를 유혹하는 군인 '아나톨'이 극을 이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액터 뮤지션의 악기 소리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일렉트로닉 음악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클럽에 온 듯 신난다. 배우들이 실제 맥주잔을 부딪친다. 그때그때 장면 분위기에 맞춰 색색깔의 옷으로 갈아입는 조명이 흥을 배가시킨다. 도우넛 모양 조명에 매달린 샹들리에도 멋스럽다.
피에르는 주로 무대 가운데 공간에 머무는데 그야말로 일당백이다. 극의 서사를 이끄는 것은 물론 아코디언과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다. 이날 피에르 역을 맡은 홍광호는 텀블링도 두 차례 선보였는데, 객석에서 박수소리 데시벨이 가장 높았던 장면 중 하나다.
'피에르' 역은 홍광호와 케이윌, '나타샤' 역은 정은지와 이해나, '아니톨' 역은 이충주와 박강현, 고은성이 연기한다. 2012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호평 속에 첫 선을 보였고, 2017년 토니어워드에서 최우수 무대디자인상과 최우수 조명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단, 559명이 등장하는 원작을 압축한 작품인 만큼 인물관계도 사전 숙지는 필수다.
중간중간 배우들이 객석에 출몰해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기도 하지만 팬데믹 시대임을 감안해 이러한 동선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배우가 관객의 호응을 마음껏 받는 날이, 관객이 넘치는 흥을 애써 억누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어서 오기길.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5월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