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연속 무죄 끝 '사법농단' 첫 유죄…양승태·임종헌 궁지 몰리나

'재판개입' 이민걸·이규진 1심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
法 "재판독립에 정면 반하는 행위"…사법농단 첫 유죄
함께 기소된 심상철·방창현 '무죄'…"혐의 입증 안 돼"
檢 "위헌적인 재판개입 행위에 첫 유죄" 환영 뜻 밝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왼쪽),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오른쪽). 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6연속 무죄 끝에 법원의 첫 유죄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에서 근무했던 이민걸 전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그 대상이 됐다.

특히 재판부는 이들의 공범으로 기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그리고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공모도 일부 인정했다. 현재 양 대법원장 등과 임 전 차장이 각각 기소돼 유사한 혐의에 대해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이날 유죄 판결이 해당 재판들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전날(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위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이 전 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전 위원은 대법원이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견제할 목적을 갖고 헌재 파견 법관에게 비공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할 것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같은 목적하에 일선 재판부가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결정을 내린 것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결론을 바꾸도록 유도하거나 매립지 등의 귀속 관련 사건 혹은 각종 통합진보당(통진당) 행정소송을 맡은 재판부에 행정처의 의중을 전달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받는다.

이 전 실장의 경우 이 전 위원과 마찬가지로 통진당 행정소송 개입한 혐의에 더해 박선숙·김수민 당시 국민의당 의원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의 유·무죄 심증을 파악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추가됐다.

이 둘은 재판 개입 혐의 외에 당시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하던 상고법원에 반대하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보장을위한사법제도소모임(인사모)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대응방안을 간구한 혐의도 받는다. 죄명으로는 동일하게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대상자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직권남용죄'가 적용됐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이중 이 전 위원의 △헌재 정보 수집 △위헌제청결정 재판 개입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인사모 활동 저지 및 탄압 중 일부 혐의를, 이 전 실장에 대해서는 △인사모 활동 저지 및 탄압 △국민의당 의원 담당 재판부 심증 파악 지시 중 일부 혐의를 각각 유죄로 인정했다.


이 전 위원과 이 전 실장이 행정처의 의중을 일선 법관에 전달한 것은 권한 남용에, 일선 법관들이 전달 내용에 맞춰 비공개 정보를 수집하거나 재판을 한 것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위헌제청결정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 사무를 담당하는 판사로 하여금 제3자가 내린 결론에 협조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정한 재판 독립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며 강도 높게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행정처가 전달한 방침에 따르지 않거나 결론만 같을 뿐 일선 법관의 판단이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형법이 보호할 가치가 침해될 위험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중 첫 유죄 판결인 동시에 사법농단 의혹의 본류인 '법원행정처의 일선 재판 개입'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판단이기도 하다. 앞서 1심이 선고된 전·현직 법관 10명은 각각의 사건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특히 일부 혐의에서는 공범으로 기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그리고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공모도 인정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유사한 혐의에 대해 별도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이날 판결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종민 기자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이 전 위원의 헌재 정보 수집 혐의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 그리고 임 전 차장이, 이 전 위원과 이 전 실장의 인사모 와해 혐의는 임 전 차장이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양형사유에서도 "이 전 위원의 역할과 책임이 가볍다고 볼 수 없으나 주도한 건 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차장"이라며 최종 책임은 당시 양승태 사법부의 수뇌부에 있다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이날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임 전 차장의 사건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최소 이날 유죄 판결이 나온 혐의에 대해서는 같은 판단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선고 연기가 계속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로 보이며 이날 판결로 임종헌 전 차장도 유죄가 나올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형사합의35부)에서 사건을 담당하고 있고 별개 사건에서의 판단이 다른 재판부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만큼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마찬가지로 재판에 개입했지만 법리 상 무죄를 선고한 임성근 전 부산고법의 1심 판결과 법리 판단이 상당 부분 엇갈린 만큼 향후 항소심에서도 법적 다툼이 치열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고위 법관은 "임 전 차장의 재판부 기피 신청을 안 받아준 것부터 유죄를 선고하겠다는 심증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전 위원과 이 전 실장도 유죄 예단이 있던 1심이 아닌 항소심부터 본격적으로 직권남용 결론에 대해 법리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의혹을 수사해온 사법농단 수사팀은 "사법행정권자의 위헌적인 재판개입 행위에 대하여 직권남용죄 유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항소 여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추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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