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며 사안의 중대성을 부각시킨 박 장관으로서는 다소 머쓱한 상황이 됐다. 대검의 결론을 뒤집을 만한 명분도 마땅찮다. 박 장관이 무혐의 처분을 수용하면 1년 가까이 이어온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도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된다.
대검찰청은 21일 "대검 부장회의를 거친 한명숙 전 총리 관련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 대해 지난 5일 처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법무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늘(22일) 밤 12시면 만료된다.
앞서 대검은 지난 5일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한 전 총리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자 사건을 조사해온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은 자신을 직무에서 배제한 채 내린 결론이라며 반발했고, 이에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사건을 재심의하라'는 박 장관의 지휘에 따라 대검은 지난 19일 부장회의를 열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지시로 전국 고검장들도 회의에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11시간 넘는 논의 끝에 무혐의 처분이 합당하다는 다수 결론을 내렸다.
부장회의에는 임 연구관도 직접 나와 의견을 개진했다. 임 연구관과 이번 사건의 기소를 주장해온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도 논의와 표결에 참여했다. 회의에서 "한 부장, 임 연구관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라"는 박 장관의 지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회의 이후 임 연구관은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모래바람 거센 광야에 선 듯한 회의장에서 굳세게 버틸 수 있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한 부장은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할 일을 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산을 내려온다"고 썼다.
두 사람의 의견 개진 절차가 보장된 만큼, 박 장관이 대검의 최종 결정에 절차적 공정성을 꼬집으며 다시 한번 지휘권을 발동할 여지는 적어 보인다. 임 연구관과 한 부장도 이번 부장회의의 논의 과정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고 있다.
수사지휘권 행사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대검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장관은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라고도 전달한 바 있다.
검찰과의 갈등도 부담이다. 추미애 전 장관 당시 잇따른 수사지휘로 경험한 검찰과의 대립을 박 장관이 스스로 재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대검의 결정을 뒤집으면 4·7 재보선이 임박한 때에 '한명숙 구하기' 비판 여론이 커질 수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결국 박 장관이 대검의 무혐의 처분은 수용하면서 검찰의 과오를 바로잡는 합동 감찰로 시선을 돌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명숙 사건 위증 의혹'은 종지부를 찍지만 잘못된 수사관행 문제를 검찰개혁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미 수사지휘 당시 박 장관은 대검 부장회의와는 별개로 검찰의 수사관행을 특별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재소자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유인 요소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우리 검찰이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합동 감찰은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 감찰부가 진행한다. 다만 '한명숙 수사팀'의 비위 행위가 발견돼도 3년의 시효가 지나 실질적인 징계는 어렵고, 법무부 장관의 공개적인 주의나 경고 조치만 가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명숙 사건뿐만 아니라 검찰 사건의 전반을 검토하고 개선의 계기로 삼자는 의미에서 합동 감찰을 실시한다"며 "한명숙 수사팀 문책보다는 수사관행을 개선해서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