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수뇌부 '한명숙 사건 위증 의혹' 불기소 결론…난감한 박범계

대검 부장·고검장 13시간 넘게 확대회의
과반수 훌쩍 넘겨 '불기소 결론'
검찰에 판단권 넘겼던 박범계, 수용 전망
檢에서는…"정치적 수사지휘"
與에서는…"확대회의안 왜 받았나"
전방위 비판에 난감한 朴장관

19일 오후 무혐의 처분했던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을 재심의를 위한 대검부장·고검장 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이 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명숙 재판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재심의 하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에 따라 19일 열린 대검찰청 부장·고검장 확대회의에서 대다수 의견으로 불기소 결론이 내려졌다.

수사지휘 당시 박 장관도 회의 결론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파악돼 이 사건을 둘러싸고 1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법적 논란도 일단락 될 전망이다. "당연한 결론"라는 검찰 안팎의 목소리와 '제 식구 감싸기'라는 여권의 평가가 교차한다. 양쪽 모두 박 장관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오전 10시쯤부터 자정 무렵까지 13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대검 부장 7명, 전국 일선 고검장 6명 등 14명이 참석했다. 해당 사건의 조사를 담당했던 한동수 대검 부장은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표결 결과 압도적인 차이로 불기소 결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논의 주제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준 적이 없다'고 번복한 고(故) 한만호씨의 대척점에 있었던 재소자 김모씨의 기소 여부였다.


한씨의 진술 번복 두 달 뒤인 2011년 2월 검찰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감방 동료 김씨는 '한씨가 내게 했던 말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것'이라는 내용의 증언을 내놨다. 김씨는 3월 재판에선 검찰과의 석연찮은 교감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런 김씨 증언은 검찰 수사팀에 의해 꾸며져 반복 훈련되거나 유도된 것이었다는 게 이번에 다뤄진 '모해위증(남을 해할 목적의 위증) 교사 의혹'의 골자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회의에선 위증 의혹을 둘러싼 재소자 증언, 증거, 공소시효 등이 폭넓게 다뤄졌다. 애초 김씨는 위증교사가 없었다고 했다. 김씨와 함께 2011년 검찰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한 목소리를 냈던 재소자 최모씨는 '위증교사가 있었다'며 지난해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가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의 의혹 부인과 일관되지 않은 주장은 불기소 쪽에 힘을 싣는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당시 검찰과 수시로 접촉했음을 입증하는 출정 기록 등 증거, 위증을 의심케 하는 오락가락한 증언 대목들, 협박성 별건 압박에 못이겨 억지로 이들과 증언 훈련을 받았지만 법정에 서는 걸 거부했다고 폭로한 또 다른 재소자 한모씨의 증언과 관련 기록 등은 이번 의혹의 근거들로 거론됐었다.

그러나 정황이나 증언일 뿐,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시각이 회의 결론에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씨의 모해위증 혐의 공소시효는 이미 끝났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에 대해선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박 장관은 불기소 결론이 나온 당일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참석자 14명 가운데 절반이 훌쩍 넘는 대다수가 불기소 의견을 낸 상태에서 이와 배치되는 추가 지휘를 내놓긴 쉽지 않아 보인다. 박 장관이 지난 17일 무혐의 결론을 내린 대검에 '재심의' 지휘를 하면서 최종 결정권도 넘긴 만큼 그가 이번 결정을 일단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22일 공소시효 만료를 코 앞에 둔 재소자 김씨에 대해 예상대로 불기소 처분이 이뤄지면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건은 정황만 무성한 의혹으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된다.

검찰 안팎에선 확대회의 결과에 대해 "당연한 결론"이라는 평가와 함께 박 장관 비판론도 터져 나온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2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2015년 대법원에서 한 전 총리 유죄가 확정되고, 특히 한만호씨가 발행한 1억원권 수표가 한 전 총리의 동생 전세금으로 쓰인 게 인정됐는데 '돈을 안 줬다'는 한씨 증언 대신 그와 정반대 증언을 문제 삼은 것 자체가 무리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명숙 명예회복 도모'라는 여권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장관은 이런 시각에 선을 그었지만, 한 검찰 관계자는 "정치가 법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당시 검찰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위증교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한 전 총리 사건 속에서도 별개의 문제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의혹 조사를 이어왔던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의 주장도 비슷하다.

이와 관련 여권 일각과 그 지지층을 중심으론 검찰이 각종 정황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 식구 감싸기식 판단을 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박 장관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또 다른 결의 장관 비판론이 나온다. 박 장관이 '대검 부장회의에 고검장들도 함께 하겠다'는 조남관 대행의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대검 부장 대부분을 친여(親與) 성향으로 보는 시각인데, 이들 사이에서도 기소 의견은 소수였던 것으로 알려져 합리성엔 물음표가 붙는다.

박 장관으로선 이처럼 전방위 비판을 받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향후 행보에 대한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징계시효는 남아있지 않지만, 일단 수사 관행 개선을 명분으로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을 지시해 놓은 만큼 진행경과와 결과에 따라 또 다시 논란이 재점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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