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투기' 2차 조사 또 용두사미…면죄부 주려고 조사했나

약 2만 3천명 조사해 찾아낸 투기의심자 겨우 43명
차명 거래·퇴직자는 손도 대지 못한 '무작정 전수조사' 방식 왜 고집했나
鄭총리도 "특수본 수사가 더 효율적…발표 없으면 국민 분노할까 조사"
정부 선택한 '여론무마' 위한 전수조사, 곳곳으로 퍼져…국민 반발만 커져
"어차피 처벌 여부도 불투명한 수사…차라리 예방책이나 제대로 만들어라" 비판도

최창원 정부합동조사단장(국무1차장)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심자에 대한 2차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합동조사단이 공직자 땅투기 의혹을 놓고 지난 보름 동안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빈 수레만 요란했던 조사를 마쳤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생색내기' 조사였다는 비판을 넘어 말단 직원만 적발하고 넘어가는 '꼬리 자르기' 조사, 고위 임원이나 국회 등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조사 아니냐는 비판까지 받을 위기다.

◇대대적인 전수조사 강조했지만…'용두사미' 그친 조사 결과

합동조사단은 지난 11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 직원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19일에는 3기 신도시 관련 지자체 및 지방 공기업 임직원에 대한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합동조사단은 1차 조사에서 국토부(4509명) 및 LH(9839명) 직원 등 1만 4348명을, 2차 조사에서는 지자체 공무원(6581명) 및 지방공기업 직원(2199명) 등 8780명을 조사해 총 2만 2999명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3기 신도시 지역에서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투기를 벌인 것으로 의심돼 수사의뢰한 인원은 겨우 43명(1차 20명, 2차 23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1차 조사에서 발견된 20명 중 13명은 이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처음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목했던 인물이어서, 실제 정부 합동조사에서 추가로 확인한 대상은 30명 뿐이다.

관련 공무원·공기업 임직원 가운데 겨우 0.18%만이 투기 의심자라는 이번 조사 결과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미 지난 18일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합동으로 조사한 결과 합동조사단의 1차 전수조사와 청와대의 자체 조사 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3%에 달했다.

'LH 투기 의혹' 현직 직원 강 모 씨가 19일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수원=박종민 기자
◇정부 '스스로 효율성 낮다' 인정한 전수조사 강행…결국 '생색내기' 조사 그쳐


1차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직원들의 실명 부동산 거래만을 확인하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방식으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민간투자자도 아닌 공무원·공기업 임직원이라면 가족이나 친척, 지인을 통해 차명 거래를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합동조사단은 수사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조사하지도 못했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투기 의혹이 제기됐던 퇴직자에 대해서도 합동조사단은 손을 놓았다.

투기 의심자 가운데 상당수가 퇴직자이거나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이었고, 심지어 퇴직자가 전현직 직원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법인까지 설립해 땅 투기에 나섰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조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내부정보나 자금 상의 연관관계 등으로 혐의를 찾은 대상에 집중하는 것도 아닌, 그저 관련 기관의 임직원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조사하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식 조사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합동조사단의 조사 방식이 '전수조사'라는 이름만 그럴 듯 할 뿐 실속이 없다는 사실은 정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에 대한 조사를 합동특별수사본부에 넘긴 이유로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수사 내지는 조사를 하기 위해서 수사본부에 이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뒤집어 말하면 정부의 전수조사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확실하지 않은 '속 빈 강정'이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전수조사를 강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 총리는 "장기간에 걸쳐서 수사를 하고 있고 아무 내용이 발표되지 않으면 국민들께서는 더 분노하실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을 먼저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LH 사태로 터진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빠른 성과를 내는 '여론무마용' 조사였다고 인정한 것이다.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보당이 연 'LH 직원 투기 의혹 정부합동조사단 1차 조사결과 발표에 따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LH 해체, 변창흠 장관 사퇴'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곳곳에 퍼진 '면죄부' 전수조사…"차라리 정부 혁신안을 기대하는 편이 나아"

명지대학교 권대중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일정 기간 토지 소유권이 변동된 내역부터 시작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인데도 정부가 비효율적인 조사를 벌였다"며 "정부가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진행했던 조사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앞장서서 선택한 '전수조사' 방식은 곳곳으로 퍼져나가서 청와대나 각종 공공기관, 지자체, 심지어 국회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셀프 전수조사'를 벌였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물론 하나같이 투기의심자를 거의 찾아내지 못하면서 '면죄부를 주기 위해 조사하냐'는 시민들의 반발만 부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무리하게 진행했던 이번 전수조사 결과는 정부에게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당장 '블라인드'에 익명으로 땅 투기 의혹 관련 조롱성 글을 올린 LH 직원을 찾기 위해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시민들은 지지부진한 조사 상황에 견주어 '투기의혹은 찾지도 못하면서 입단속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만약 합동조사단이 조사했던 대상에서 특수본이나 특검이 내부정보 투기자들을 대거 찾아낸다면, '정부는 왜 의미없는 전수조사에 시간과 인력만 낭비했느냐'는 비난도 받을 수 있다.

권 교수는 "정부가 4월 보궐선거 때문에 사태를 크게 키우지 않으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계속 봐주기식 수사를 벌인다면 오히려 대통령 선거까지 사태가 이어지면서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소장은 "투기 의심자를 아무리 많이 찾아내더라도 이들이 혐의를 발뺌한다면 어차피 직무관련성을 입증해서 제대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며 "현실적인 조사·수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소장은 "물론 조사·수사를 통해 찾아낸 투기의심자의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이러한 내부 투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작업"이라며 "정부가 이 달 안에 발표할 혁신방안에 헛점은 없는지 냉정하게 살펴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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