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교묘히 피해자 탓만…학폭 자성 없는 연예계

유관 단체들 처음엔 사과했지만…결국 가해 의혹 연예인만 '비호'
업계 손실과 피해만 강조하며 끝내 피해자 외면…책임도 '실종'

학폭을 인정한 배우 지수는 KBS '달이 뜨는 강'에서 하차했고, '디어엠'은 주연 배우 박혜수 학폭 의혹에 방영이 무기한 연기됐다. KBS 제공
자성은 없이 호소만 남았다. 연예계가 학교 폭력 논란에 얼룩진지 한 달, 유관 단체들까지 나섰지만 결국 대중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보다는 업계 손익을 따지는 데 골몰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외 4개 단체는 학교 폭력(이하 학폭) 사태와 관련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먼저 이들 단체는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지만 직후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들을 보호하는 업계 중심 논리를 펴나갔다.

이 같은 폭로가 '또 다른 피해'를 낳고 있다며 학폭 가해 연예인이 참여한 작품들에 얽힌 업체와 연예인들의 '막대한 손실'을 강조하는가 하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와 대중문화예술 산업 전반의 위축까지 우려했다.

여기에 더해 언론 매체에는 '잘못이 확인된 경우'에만 보도하도록 자제를 요청했고, 방송 관계자들에게도 '의혹만 가지고 하차를 결정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끝까지 피해자를 향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금전적 손해를 근거로 가해자를 감싸는 식의 주장만 넘쳐났다. 그렇다 보니 유관 단체로서 의혹을 적극 규명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 또한 실종됐다.


합리적 해결책이라며 피해자들을 위해 제시한 방안들은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범위' '연예인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 등 전제를 달았다. 이와 반대로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들에게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근거 없는 무분별한 폭로로부터 보호하겠다'며 단호하게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이들 단체는 "학교폭력 가해자 연예인의 폭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이런 식의 호소는 피해를 증언한 개개인에게 화살을 돌려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업계 호소가 향후 또 다른 피해자를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학폭 사건은 피해자의 증언과 가해자의 기억을 맞춰 보는 지난한 과정이 따른다. 증언 중심이라 사실상 물적 증거가 부족해 경찰 수사를 통해도 진실 여부는 밝혀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확인'은 무조건적인 고발이나 엄포가 아니라 피해자 증언을 청취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종 언어 및 신체 폭력, 따돌림 등을 당한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업계가 걱정하는 어떤 금전적 손해로도 갚을 수 없는 상처다. 애초에 자본 논리로 접근해 비교 우위에 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얼마나 살피느냐에 있다. 이를 망각한다면 대중의 불신과 지탄은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업계가 스스로 뒤돌아보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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