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참 전부터 대북·대중정책의 일환으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강조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두 나라의 속내와 현실적인 문제로 실질적인 '안보협력'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 군사정보는 필요하다는데 '강경' 일변도 일본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물론, 나아가 중국까지 견제해야 한다는 전략을 강조한다. 일본 역시 한국과의 군사협력 자체는 원한다.
일례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생기는 레이더의 음영구역(탐지가 불가능한 영역) 때문에 북한 미사일 발사 탐지에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의 레이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서 정보를 공유받아야 발사 여부를 빠르게 알 수 있으며 이는 자국 안보와도 직결된다.
한일은 2014년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과 2016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통해 1급을 제외하고 2급 비밀까지의 군사정보를 공유해 오고 있다. 여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확정으로 일본이 수출 규제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그해 8월 한국이 GSOMIA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하자 미 당국자들이 '실망과 우려' 등의 발언을 쏟아내는 등 외교적 압박을 동원한 중재에 나섰다. 3개월 뒤 한국이 조건부로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를 발표함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개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블링컨·오스틴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일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매우 중요하고 한미일 협력에도 굳건한 토대가 되는 만큼 양국 관계 복원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전했다.
하지만 지난달 12일에도 일본은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와 외무성 아키바 다케오 사무차관의 면담에서도 한국 측의 시정책을 요구하는 등 계속해서 강경한 분위기다.
◇한국도 안보협력 언급은 하지만, 실질적으론 개점휴업
이런 상황에서 한일이 '안보협력' 분야에서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안보협력의 가장 명확한 지표로 꼽을 수 있는 연합훈련의 경우, 코로나19 등의 상황으로 육군과 공군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며 바다에서 만날 일이 종종 생기는 해군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해군은 지난해 8월 미국 하와이 근해에서 열린 다국적 환태평양훈련(RIMPAC), 직후 괌까지 이동하면서 미국·호주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한 연합기회훈련, 마찬가지 3개국과 함께하는 '퍼시픽 뱅가드(Pacific Vanguard)' 연합훈련에 참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사람 대 사람이 만날 일은 없다시피 했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직후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는 "지난해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Tri-CHOD), 3국간 차관보급 안보회의, 연합훈련과 군사교류를 정상적으로 실시했고 올해에도 이러한 안보협력 기조를 유지하고자 한다"며 "6월로 예정된 샹그릴라 다자안보회의 등 계기에 한미일 고위급 정책협의를 실시하고, 각 군 차원 교류와 다자연합훈련에 참여하는 등 안보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 나갈 것이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 문제의 매듭을 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듯, 서 장관이 언급한 스케줄들도 대부분 이미 예정돼 있는 수준 정도다. 실무적으로 안보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키포인트가 없는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문 대통령과 블링컨·오스틴 장관의 만남에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일관계의 구체적 현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고, 한미일 협력과 한일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데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현안과 과거사 문제를 분리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일본이 거부한 상태에서 사실 미국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北 비핵화 접근법에 괴리 보이는 한일…방법론 크게 차이나는데 안보협력?
한일 2+2 회의 직전 열린 미일 2+2 회의 공동성명을 보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평양에 유엔 안보리 결의 아래의 모든 의무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한미 2+2 회의 성명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표현됐다.
두 공동성명 모두 미국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면서도 한일 각 당사국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양국의 시각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내용을 보면 일본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선 비핵화', 우리는 비핵화에 대한 거부는 아니더라도 '(북핵) 위협 감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단계적 접근법에 따른 군비통제 방식인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북한이 먼저 완전한 비핵화를 하고 나서야 반대급부를 줄 수 있다는 일본의 비핵화 접근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한미 성명에서 "한미 양국은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면서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적시하기는 했다.
대북정책 재검토를 아직 마치지는 않았지만, '동맹 중시'를 표방한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한국의 의견(input)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임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자체는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기본적으로 한일의 안보전략, 즉 비핵화 과정에 대한 목표와 접근법이 다르다는 엇박자가 이미 드러났다는 점에서 미국이 원하는 실질적인 안보협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대목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한미가 이번 회의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과 '상호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 협력'을 언급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일단 봉합한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