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1500m 챔피언 임효준(25)이다. 한국은 물론 귀화한 중국 국가대표로도 일단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는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상황.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도 힘들게 됐다.
임효준은 국민들에게 극히 예민한 귀화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게 들통이 나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임효준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브리온 컴퍼니는 지난 6일 "임효준이 중국 귀화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마치 귀화가 최근 결정된 것 같은 뉘앙스였다.
그러나 임효준은 이미 한참 전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지난 17일 고시한 관보에 따르면 임효준은 지난해 6월 3일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9개월 전 귀화가 이뤄졌는데 마치 고심 끝에 최근 귀화를 한 것처럼 대응했던 셈이다.
더군다나 임효준은 귀화한 이후에도 한국 대표팀으로 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후배 강제 추행 사건으로 지난해 11월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던 임효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설 수 있는지 수 차례 문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효준 측이 "국내 상황이 나아지면 중국 국적을 포기하려고 했다"고 해명했지만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국적을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국적을 놓고 이른바 '양다리'를 걸친 셈이다.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린 첫 번째 그릇된 판단이었다.
이에 앞서 임효준은 연맹을 상대로 서울동부지법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냈고, 징계 정지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2019년 12월 받아들여졌다. 2019년 6월 국가대표 훈련 도중 후배 선수의 바지를 벗긴 강제 추행으로 연맹이 내린 1년 선수 자격 정지 징계에 대한 효력 정지 신청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판이었다는 지적이다. 당초 임효준이 연맹의 징계를 받아들였다면 지난해 8월 선수 자격이 회복될 터였다. 그렇다면 강제 추행 소송과는 별개로 임효준은 대회 출전이 가능했을 상황. 다음 달로 예정된 내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와 태극 마크를 다시 달 기회가 있었을 것이었다.
임효준은 그러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 선수 자격 정지 징계가 멈춘 상황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 징계는 강제 추행 소송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빙상계 관계자는 "연맹의 징계가 나왔을 당시에는 선수 생활에 대한 의지가 있어 효력 정지 소송을 따로 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어차피 추행 소송으로 선수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자숙을 하면서 1년을 보냈다면 이런 사단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물론 앞서 후배 선수 A가 여자 선수에게 신체 접촉이 이뤄진 장난을 하긴 했다는 전언이다. 빙상계 관계자는 "대표 선수들은 훈련이나 국제 대회 출전 등 오랫동안 함께 지내기 때문에 편한 복장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친다"고 귀띔했다. 다만 해당 여자 선수는 A의 행동이 추행이 아니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임효준이 했던 장난의 결과는 달랐다. 이 관계자는 "임효준의 경우는 운이 좋지 않았다"면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선수들도 있던 터라 후배 선수가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난처럼 한 행동이었지만 심각하게 사태가 커진 불운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임효준은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1500m 금메달, 500m 동메달을 따내며 단숨에 에이스로 부상했다.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1000m와 1500m, 3000m 슈퍼 파이널 등 3관왕에 오르며 개인 종합 우승까지 차지해 쇼트트랙 황제에 올랐다. 김동성, 안현수, 이정수의 뒤를 이을 대한민국 쇼트트랙 계보를 써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수 차례 판단 실수로 창창했던 임효준의 앞날이 흐려졌다. 사실상 내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올림픽 챔피언. 일단 중국에서 선수 생활은 하게 될 전망이지만 에이스를 잃게 된 한국 쇼트트랙이나 임효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