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중국 압박한 美 국무…대북정책은 아직 뒷전

블링컨 "중국, 강압적 인권 탄압"…국방장관도 "전례없는 위협" 적시
외교부 "북핵,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 인식"…美 모두발언과 다소 온도차
한일관계 언급도 없어 눈길…외교부는 "한미일 협력 중요성 공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미국의 국무·국방장관이 11년 만에 동시 방한했지만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북핵 문제보다 중국에 대한 포위·압박 전략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7일 오후 일본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입국해 각각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과 회담했다.

18일 오전에는 양국 외교·국방장관이 나란히 '2+2' 방식의 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오후에는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블링컨 장관은 정 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 이례적으로 다소 긴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미국 애틀랜타 총기 사고로 희생된 한국인들에 애도를 표하고, 최근 타결된 방위비 협상을 언급하는 등 공고한 한미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정의용(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회담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그는 한국을 동북아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해왔던 기존 표현과 달리 인도·태평양과 사실상 세계의 핵심축이라고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인권, 민주주의, 법치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달성하기를 원한다"면서 중국에 대한 노골적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중국이 홍콩의 경제를 허물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티벳의 인권을 탄압하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강압적 수단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행태를 최근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와 함께 거론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한 침탈을 목도하고 있기에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용산국 국방부에서 의장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로이드 국방장관도 이날 양국 장관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의 전례 없는 위협으로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적시함으로써 방한 의도를 더욱 분명히 했다.

물론 블링컨 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도 핵·미사일 위협과 인권 문제까지 비판했지만 중국과 비교하면 강도는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 및 협력국가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용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등의 표현은 없었고 북한에 대한 정식 호칭(DPRK)이 언급되기도 했다.

북한 인권에 대해 "북한의 독재정권이 인민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긴 했지만 기존의 발언 범위를 벗어나진 않았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전날 도발적 언동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발언만 놓고 볼 때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보다 대중국 전략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탓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증표일 수도 있다.

다만 외교부는 이날 회담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북한・북핵문제가 시급히 다루어야 할 중대한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했다.

18일 양국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이어지겠지만 중국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협의체) 가입 문제가 거론될지가 오히려 관심인 상황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외교 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한편 이날 외교장관 회담에선 한국 측의 또 다른 관심거리였던 한일관계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일 협력 강화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고, 외교부가 사후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언급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은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연계해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미 간 협력을 계속 증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양국 장관은 이날 한미관계와 한반도 문제, 지역 및 글로벌 현안 등 크게 4개 현안을 놓고 확대회담 80분과 단독회담 25분 등 약 1시간 45분 간 회담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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