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유럽 AZ백신 접종 중단…정부는 접종 계속

독일·프랑스 등 유럽 각국 예방 차원 접종 중단
명확한 인과관계 설명한 국가는 없어
"백신 접종 뒤 혈전 반응, 자연발생 빈도보다 낮아"
"인과관계 있다기보다 우연" "중단 근거 미약" 지적
정부 "주변국 움직임에 각국 유사하게 중단 조치하는 것"
우리나라는 유사 사례 없고, 백신 문제도 불거지지 않아

연합뉴스
오스트리아에서 불거진 혈전 이상반응의 여파로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일시 중단하기로 한 국가가 전 세계 20개국에 달하고 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접종을 중단한 국가들 중 근거를 제시한 곳은 없다고 밝히며,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처럼 접종을 계속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혈전에 유럽 불안감…연이어 접종 일시 중단

현지시간 7일 오스트리아 보건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받은 여성 2명에게서 혈전 증상(혈액 일부가 혈관에서 굳는 질환)이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49세 여성은 숨졌고, 또다른 35세 여성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동일한 제조번호(batch ABV 5300)를 가진 백신을 맞았는데, 제조번호는 동일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백신 제품에 붙는 고유 번호이기 때문에 백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오스트리아 보건당국이 해당 제조번호에 대한 예방접종을 중단하고 심층 조사에 나섰고, 같은 제조번호의 백신이 공급된 덴마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국가에서도 접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이어 현지시간 11일에는 이탈리아 보건당국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뒤 사망사례가 나오자 'ABV 2856' 제조번호의 접종을 중단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연합뉴스
이처럼 접종 중단 움직임이 커지며 아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전체의 접종을 중단하는 국가도 나타났다. 현지시간 14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에 이어 15일에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도 접종을 일시 중단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유럽이 아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도 접종 중단 결정이 내려지며 세계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한 곳은 20여개 국으로 늘었다.

다만, 접종 일시 중단을 선언한 국가 어느 곳에서도 백신과 이상반응 사이 인과관계를 설명한 곳은 없었다.

이미 유럽의약품청(EMA)이 현지시간 10일 사망 원인과 백신 사이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백신 접종 뒤 혈전, 자연 발생 빈도보다 낮아"…근거 희박

유럽의약품청이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혈전이 생긴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유럽연합에서 백신을 맞은 500만 명 중 혈전 발생사례는 30건으로 자연 발생 빈도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도 현지시간 15일 "접종자가 혈전 등의 증상을 보일 확률은 자연 발생 확률보다 낮다"며 접종을 계속할 것을 권고했다.

전문가들도 백신 접종으로 인한 혈전 발생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 폴 오핏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에 인과관계가 있다기보다는 우연인 것 같다"고 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는 "백신 접종으로 인해 혈전이 일어났던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며 "통계적으로 봤을 때 백신 접종 뒤 혈전 생성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도 아니므로 유럽 국가들이 접종을 중단한다는 근거는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주사기에 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정부는 유럽 국가들이 백신 자체의 문제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예방적 차원에서 접종 중단 움직임에 동참한 것이라 보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추진단 박영준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16일 "접종을 중단한 국가들에서 관련성을 확인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며 "예방적으로 주변 국가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했기 때문에 인접 국가에서도 조사결과가 확인될 때까지 유사하게 특정 백신의 접종을 일시 보류, 중단하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거는 없지만,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은 오는 18일 발표될 것으로 예정된 유럽의약품청의 회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유럽의약품청이 과학적 판단에 기반해 결론을 내릴 경우, 일시 중단된 백신 접종이 재개되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들 전망이다.

◇정부 "현 시점에서 중단 검토 안 해"…접종 이득이 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에서 코로나19백신 자체접종이 열렸다.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정부의 경우 현재 접종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문제가 된 제조번호의 백신이 국내로 도입된 바 없고, 혈전 증상이 나타난 접종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보고된 국내 사망사례 16건 중 검토된 14건도 모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자이지만, 사망과의 인과성이 확인된 경우도 없었다.

질병관리청은 16일 공식 입장에서 "현 단계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 중단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유럽에서 접종을 중단한 국가가 늘어나는 것을 예의주시하면서 전문가들과 국내외 상황을 재평가하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재갑 교수는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거센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중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혈전 이상반응 때문에 접종을 중단하는 것보다 제때에 접종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크다"고 제언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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