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위급 방한 하루 전 나온 김여정 담화…2+2 회담 노렸나

美 국무·국방장관 방한 하루 전 발표
조평통·금강산 관광국 폐기 압박하면서도 여지 남겨
강도높은 대남 비난으로 미국도 압박
대미메시지 '수위 조절'로 美 대북정책 탐색
'2+2회담', 향후 남북·북미관계에 주요 계기 작용할 듯

박종민 기자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시점이 공교롭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17일 방한을 하루 앞두고 발표됐다.


이에 따라 북한이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미 국무·국방장관의 방한 하루 전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한미 외교·국방장관이 참여하는 '2+2 회담'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쓴 담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제목의 김여정 담화는 대부분 한미연합훈련재개와 관련해 남한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내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8차 당 대회에서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 등 근본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3년 전 봄날과 같이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했으니, 이제 '마주 앉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구체적으로 '대남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 국제 관광국 등 관련기구를 없애 버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런 중대 조치들은 이미 우리 최고수뇌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현 정세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고(조평통), 남조선 당국과는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 없다(금강산 관광국)"는 인식이다.

국회사진취재단
김여정 부부장은 더 나아가 "우리는 앞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라며,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남북) 군사분야합의서도 씨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평통과 금강산 관광국 폐지에 대한 최고수뇌부의 최종 결정이 아직 남아 있고, 남북군사합의서의 경우 향후 남측 태도를 보겠다고 하면서 일정한 여지를 두고는 있지만, 남북관계 복원의 토대가 되는 제도와 기구를 없애겠다는 것이니 사실상 남북관계의 단절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강도 높은 대남비난은 사실 남측만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한을 거칠게 비난함으로써 미국에 메시지를 전하는 통상적인 방식이다.

특히 북한은 그동안 미국 바이든 정부에 관망세를 보이다가 이번 김여정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말을 건네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이 기회에 우리는 대양 건너에서 우리 땅에 화약내를 풍기고 싶어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마디 충고한다"며, "앞으로 4년 간 발편잠(편한 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봄날은 다시 없다'고 남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비난하는 '이 기회'에 미국에도 한 마디 충고를 하니, '일거리를 만들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김여정의 대미경고는 사실 남측 비난과 비교할 경우 분량도 적고 수위도 약하게 조절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가능성과 관련해 "앞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와 행동을 주시할 것"이라고 여지를 준 것처럼, 현재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절제된 톤으로 메시지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연합훈련이 곧 종료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일차적 관심은 일단 18일 열리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바이든 정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의견 조율이 여기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황진환 기자
통일부 당국자는 김여정 담화와 관련해 "한미연합훈련이 조만간 마무리되고, 미국 국무·국방장관의 한국 방문을 하루 앞둔 시점에 나온 담화라는 데 주목한다"며, "한미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이번 '2+2회담'을 계기로 북한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 보내온 대북 메시지, 즉 인권, 한미일 공조 강조 등은 북한에게는 상당히 실망스런 내용이기도 하다"며, "결국 '2+2 회담' 등에서 자신들을 심하게 자극하는 발언이나 회담 내용이 나오지 않기를 경고하는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이번 '2+2회담'은 향후 남북·북미 관계에 주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정부가 현재 검토 중인 대북정책이 확정 되는 것에 앞서 북한이 상황 파악과 대응 방향을 결정하는데 참고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한편 통일부는 남북관계 단절을 예고하며 미국을 향해서도 경고를 한 김여정의 이번 담화에 대해 "남북 간 적대관계 해소는 대화에서 시작되고 협상에서 마무리되며 협력을 통해 확대 된다"며, "어떤 경우에도 대화와 협력 노력이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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