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 사건으로 이름 붙여졌으나 실상은 채용 성차별인 사건들, 피해를 봤지만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문제제기를 포기한 여성 지원자들의 목소리는 채용 성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돼 왔음을 보여준다.
◇면접장에서 판치는 '성차별' 질문들
"본인이 성차별을 당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A씨는 1년여 전, 한 대기업 공채 전형 면접을 보러 갔다가 면접관에게 이같은 질문을 들었다. 당시 면접관은 다른 여성 지원자에게 이같이 물었다고 한다. '여기는 남자 직원이 많은데 어떨 것 같나', '생리 휴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등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A씨는 "회사가 성차별 피해를 신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어필(피력)해도 모자를 판에 성차별을 예고하는 것만 같아 황당했다"고 말했다.
B씨도 면접관이 결혼과 출산 계획을 캐물었다고 전했다. 면접관은 B씨에게 '여직원들은 결혼하고 육아휴직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결혼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B씨는 "문제 제기하고 싶었지만,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고 면접관이 어떤 답을 원하는지도 빤히 보여 '그들'이 원하는 류의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평소 남직원과 잘 어울리는지', '미투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질문을 받은 여성 지원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에는 "면접에서 '남성 상사와 출장을 가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 숙소를 두 개나 잡으면 비용이 두 배로 드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을 들어, 문제 제기하고 싶다"와 같은 채용 성차별 사례가 접수됐다.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9월 구직자 173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 구직자의 21.1%가 면접에서 성별을 의식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경험은 남성(9.6%)보다 여성(30.4%)에게 두드러졌다. 성별을 의식했다고 느낀 질문은 향후 결혼 계획(50.7%), 출산·자녀 계획(43%), 애인 유무(37%), 야근 가능 여부(34.5%), 남성·여성 중심 조직문화 적응에 대한 생각(30.4%) 등이었다.
동아제약의 성차별 채용 논란은 최근 한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에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신입사원 면접을 본 여성 지원자 C씨가 댓글을 달면서 알려졌다. C씨는 당시 인사팀장이 남성 지원자 2명에게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는지' 등을 물었고, 이후 자신에게는 "○○○씨는 여자라서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 동의하냐", "군대에 갈 생각이 있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동아제약은 C씨에게 사과를 한다며 댓글을 남기는 방식을 택해 논란을 키웠다. C씨 측에 따르면 동아제약이 현재 취한 조치는 최호진 사장의 유튜브 댓글, 사내 이메일 등이 전부다. 사측은 '군필자 신입 초임 가산 제도에 대한 이슈를 논의 중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15일 입장문을 통해 "성차별을 성차별이라 부르지 못하는 동아제약은 17세기에 살고 있는 홍길동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차별과 불평등은 쾌·불쾌의 영역이 아니며, 단순히 성차별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명백한 성차별임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김유리 조직국장은 "남성들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질문을 공부할 때, 여성들은 성차별적 질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들이 원하는 답변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C씨와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동아제약과 고용노동부에 공개 의견서를 보냈다. 이들은 동아제약에 공식 사과와 채용 성차별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에는 특별근로감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동아제약의 위반사항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사안에 따라 경고, 구두 경고 등의 조치나 정식 사건 제기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채용 성차별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7년엔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채용 성차별 사건이 불거졌고, 신한금융과 KB국민은행 등 금융권은 전형 과정에서 성비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채용 성차별 문제가 불거진 조직 대다수는 구체적인 채용 조작 행위를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용 평등을 보장하는 취지의 법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고평법) 제7조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제4조의3 등은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여성·남성을 차별해서는 안 되며,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등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면접에서의 성차별 질문·사상 검열 등 전반적인 인권 침해를 현행법상 처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처벌 여지는 있지만, 현행법상 규제하기 어렵다"며 "국가인권위법에서 규정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따라 민법상 불법행위로 보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고 했다. 다만 인권위가 시정을 요구해도 권고적 효력만 있어, 조직이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사업주를 관리·감독할 권한이 있는 고용노동부가 채용 성차별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일관되게 나왔다. 정부 차원의 성차별 채용 가이드라인은 여성가족부가 2019년 초 금융권 채용 비리가 불거지자 발간한 '성평등 채용을 위한 안내자료'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연구위원은 "성희롱 관련 (가이드라인 등)은 '미투' 이후 그나마 생산됐는데, '차별' 관련은 매우 적다"며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 가운데 노동부가 배포한 자료로는 지난해 나온 고용차별 사례집이 거의 유일하다. 채용 성차별 사업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고 보기에 애매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조직과 노동부가 면접장에서의 성차별 질문 등을 '채용 성차별'로 직시하고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 연구위원은 "노동부가 채용 성차별 신고를 접수하거나 사안을 인지하면, 각 청에 임명된 성희롱·성차별 전담 근로감독관이 행정 지도나 감독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행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 제도를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구 연구위원은 "일부 기업은 여성고용이나 임금 격차 현황 등을 노동부에 보고하고 있지만 (자료를)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며 "신규 채용자 성비를 공개하고 있는 공공기관처럼 (다른 조직도) 이를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성차별 질문뿐 아니라 사상을 검열하기 위한 질문 등 면접 과정에서 벌어지는 반인권적 질문, 포괄적인 성차별을 막으려면 채용절차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조직을 교육하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