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으로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공동매입과 차명거래 등 다양한 투기 수법이 드러나고 있다. 한층 진화된 투기 수법으로 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한 사례들을 살펴봤다.
현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이후 인천 계양 3기 신도시 공공주택개발지구에서 이뤄진 토지 거래 가운데 전문 투기 세력의 거래 사례로 인천 박촌동 200번지대에 있는 1527㎡ 규모의 농지가 손에 꼽힌다.
정교한 거래 기록으로 부동산 관계자들도 수사기관의 추적 없이는 실제 거래자를 찾기 불가능한 데다 LH 직원과 동일인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여럿 나오고, 쪼개기 거래와 차명 거래 의혹 등 편법 부동산 거래의 '끝판왕'격이라는 평가다.
◇"채소 경작하겠다" 인천 박촌동 농지 공동매입한 제주도 거주자 A씨
이 농지의 토지 거래는 LH가 국토교통부에 인천계양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제안한 2018년 11월23일보다 7개월 앞선 4월 24일에 이뤄졌다. 제주도 제주시 거주자 A씨와 경기도 부천시 거주자 B씨 등 2명이 매매가 2억8천만 원에 공동매입했다. A씨는 전체 필지의 80%에 해당하는 1197㎡에 지분(2억2천만 원)을, B씨가 나머지 330㎡의 지분(6천만 원)을 차지했다.
이 거래는 이때부터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행법상 농지 매입은 농업인만 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주말농장을 경영할 목적으로 매입할 경우에만 1천㎡ 한도 내에서 매입할 수 있다.
농업인 여부를 떠나 A씨의 박촌동 농지 매입은 비상식적이다. 제주도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A씨가 직접 농사를 하기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고, 주말농장 운영 목적으로 매입했다고 하기에는 법적 매입한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매입 당시 A씨와 B씨는 이 땅에서 채소 경작을 하겠다고 신고했지만 이 땅은 애초 벼농사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토지거래를 허가한 지방자치단체의 농지 관리가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없이 2억2천만 원에 농지 매입한 A씨…거주지는 모두 타인 소유
토지 매입 당시 A씨가 거주지로 신고한 제주시의 오피스텔은 2010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A씨와 성씨가 다른 제주도민의 소유였다. 이후 A씨가 박촌동 농지를 매입하기 1달 전인 2018년 8월 경기도 화성시 거주자의 소유로 바뀌었다.
A씨의 두 번째 거주지인 경기도의 오피스텔 역시 2015년부터 A씨와 다른 성씨의 부천시 거주자 소유로 확인됐다. A씨가 신고한 제주도와 경기도 거주지 모두 A씨 소유는 아니었던 셈이다. A씨가 거주지로 신고한 제주도와 경기도의 오피스텔의 평균 매매가격은 2018년 기준 6천~7천만 원이었다.
A씨는 2억2천만 원에 해당하는 박촌동 농지를 은행대출없이 매입한 A씨가 평균 매매가 6천~7천만 원의 오피스텔에서 전세나 월세 등 임대인 자격으로 지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인천 계양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A씨가 거주지로 신고한 주소의 부동산 매매기록을 봤을 때 실제 A씨가 해당 주소에서 거주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철저하게 자신의 거주지를 숨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A씨는 박촌동 농지 구매를 통해 토지 1천㎡ 이상 소유자에게만 제공되는 3기 신도시 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A씨와 똑같은 이름은 LH 직원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B씨 역시 거주지 불분명…신고한 집 소유자는 LH직원과 동명인 소유 아파트 세입자
B씨는 또 농지 330㎡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은행은 B씨의 토지 지분 매매가격인 6천만원보다 많은 채권최고액 1억9천여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한편 B씨가 농지 매입 당시 신고한 부천시 주택의 소유자는 B씨와 같은 성씨를 가진 경기도 하남시 거주자 C씨다. C씨는 B씨가 신고한 곳 외에 인근에 615㎡ 규모의 토지도 소유했는데 이 곳 역시 2018년말 부천시 주택재개발 사업지역에 포함돼 수용됐다.
C씨가 거주지로 신고한 하남시 아파트는 C씨와 성씨가 다른 다른 부부가 공동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부 중 한 명은 LH 직원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요약하면 인천 계양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B씨는 거주지가 불분명하다. B씨가 계양 신도지 농지를 매입할 때 신고한 주택은 B씨와 같은 성씨를 가진 C씨의 것이고, 이후 C씨의 주택은 주택재개발 사업부지로 지정돼 토지보상을 받았다. C씨가 거주지로 신고한 곳은 LH 직원과 같은 이름을 가진 부부가 공동소유한 아파트다.
◇"빚 갚아라" 매매가 6천만 원B씨 땅에 6억7천만원 근저당·지상권 설정한 D씨
박촌동 농지를 매입한 A씨와 B씨 모두 실제 거주지가 불분명한 데다 LH 직원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배후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LH 직원이 쪼개기 매입과 차명거래 등의 수법으로 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이들이 농지를 매입한 이후 D씨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의혹은 더욱 커졌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신고한 D씨는 2019년 9월과 지난해 8월 등 2차레에 걸쳐 박촌동 농지 가운데 B씨의 지분에 해당하는 330㎡ 토지에 모두 6억7천만 원 규모의 근저당권과 지상권을 설정했다. D씨가 지상권을 설정한 기간은 30년이다.
근저당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미리 특정 부동산을 담보물로 저당 잡아 해당 담보에 대해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변제를 받기 위한 권리를 설정하는 행위다. 지상권은 토지 소유자가 토지를 팔아 누군가에게 소유를 넘기는 경우 새로운 토지 소유자에게 해당 토지의 사용권을 제약할 때 사용하는 법적 권리다.
즉 D씨는 해당 농지가 신도시 사업 시행사로부터 보상을 받고 수용될 때 B씨가 받을 수 있는 330㎡ 지분에 대한 보상금을 가져가겠다고 권리를 설정한 것이다. 또 보상금이 6억7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면 수용된 이후에도 건축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적 제약을 가했다.
D씨가 지상권을 설정한 30년은 석조나 석회조 등 견고한 건물이나 수목의 소유나 건축을 제한할 수 있는 최대기간이다. D씨가 지상권을 풀지 않을 경우 시행사는 최대 30년간 해당 토지를 개발할 수 없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지…LH의 토지보상은?
D씨의 행위로 인해 박촌동 농지의 투기 이익은 시행사가 당초 예상한 보상가의 2배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행사가 토지 소유자들에게 ㎡당 40만원 내외의 현금 보상을 추진하는 것에 비춰보면 D씨의 근저당과 지상권을 제외한 보상가는 6억원 미만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D씨의 행위가 철저하게 계산된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상권과 근저당권 설정이 정부의 3기 신도시 지구 지정 직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매가 기준 6천만 원에 불과한 농지에 대해 10배가 넘는 금액의 근저당권 설정하고 30년간 지상권을 행사하겠다고 신고한 사례는 매우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인천의 부동산 관계자는 “D씨가 3기 신도시 지정 부지를 매입하지 않았는데도 사실상 매입한 것과 다름없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고도의 계산된 행위로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한편 D씨의 거주지 역시 불분명하다. D씨는 근저당 설정 당시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를 거주지라고 신고했지만 해당 아파트는 D씨와 성씨가 다른 경남 진해시 거주자가 2001년부터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D씨 역시 같은 이름을 LH 직원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등기부등본으로 추적할 수 없는 사람들…수사 필요
결과적으로 인천 계양 3시 신도시 내 박촌동 농지는 관계자 전원이 LH 직원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과 연관됐다. 거주지는 서류상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비상식적인 근저당과 지상권 설정이 더해지면서 실제 이들 사이의 금융거래 기록이나 주민등록 등 조사의 영역에서는 도저히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부동산 관계자는 "이들이 LH 직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토지 거래나 근저당 설정 시점으로 보면 개발정보를 사전에 알아야만 가능한 행위로 보인다"며 "매우 전문가들도 따라잡기 어려운 매우 진화된 투기 수법으로 판단돼 이 미스터리의 전말을 밝히려면 수사력을 동원해야 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천 3기 신도시 박촌동 농지 매입 미스터리 개요 |
△위치 : 인천 계양구 박촌동의 한 농지 (3기 신도시 인천 계양지구에 포함) △면적 : 1527㎡ △사건 일지 - 2018년 4월 24일 매입 : 매매가격 2억8천만 원 = 공동소유자 A씨(공유지분 1527분의 1197, 2억2천만 원), 제주 제주시 노형동(소유자 불일치) = 공동소유자 B씨(공유지분 1527분의 330, 6천만 원), 경기 부천시 범박동(실소유자 C씨) - 2018년 5월 28일 박촌동 농지 취득 자격증명 발급 - 2018년 6월 4일 : 근저당설정 1금융권 (채권최고액 1억9080만 원), 채무자 B씨 - 2018년 9월 4일 A씨 주소지 변경 : 제주 제주시 노형동 → 경기 시흥시 도창동(소유자 불일치) - 2018년 11월 23일 인천계양 공공주택지구 지정 제안(LH → 국토부) - 2018년 12월 19일 3기 신도시 정책 정부발표 - 2019년 9월 6일 근저당설정(D씨) 채권최고액 4억2천만 원(채무자 B씨) - 2019년 9월 6일 지상권설정(D씨,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의 소유) = 범위 : 토지의 전부 = 존속기간 : 설정등기일로부터 30년 - 2019년 10월 15일 3기 신도시 지구지정 및 지형도면 고시 - 2020년 7월 22일 공공주택지구 지정(변경) 고시 - 2020년 8월 7일 근저당설정(D씨) 채권최고액 2억5천만 원(채무자 B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