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미 신뢰가 땅에 떨어진 부동산 대책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지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LH 투기 의혹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국토교통부 변창흠 장관에게 사실상 사의를 수용하면서도, "2·4 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며 관련 기초 작업을 마쳐달라고 주문했다.
투기 의혹에 관계없이 부동산 대책은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도 정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당초 계획했던 공공주택 공급은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한부 장관'이 된 변 장관의 리더십 공백과 현장에서 정책을 추진할 실무기관인 LH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겹치면서 이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스스로 동력을 잃은 상태다.
그럼에도 정부로서는 가뜩이나 이번 투기 의혹으로 부동산 정책의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흔들리는 민심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정면 돌파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기 신도시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이번 투기 의혹에 가담한 자들에게 강도 높은 처벌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법으로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내부정보를 외부에 흘리거나, 투기에 활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투기의심자'들이 '경기 광명·시흥 지구는 오랫동안 개발이 예상됐던 지역이어서 투자했다', '직무에 무관하게 개인적인 이유로 투자했다'고 발뺌하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번 투기 의혹에 대한 처벌이 흐지부지될 우려가 큰 마당에, 정부가 이들이 부당이득을 거두지 못하도록 차단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면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 아직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지 않아 사건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운 시점에 정부가 기존 대책을 유지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자칫 '수사대상의 한계를 미리 그어놓고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광명·시흥 뿐 아니라 다른 개발사업 대상 지역에서도 줄줄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 의혹이 제기된다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장 오는 7월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예정된 것을 감안하면, 해당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입장 자체가 '7월 이전에 마무리하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소장은 "이미 토지를 거래한 내역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2.4 대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증거나 증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며 "처벌은 물론 부당하게 거둔 이익도 환수해야 하지만, 부동산 공급대책은 수사와 별개로 투 트랙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대로 수사 결과 다른 개발 사업에도 투기 의혹이 나온다고 해서 모든 관련 사업을 전부 중단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이미 정부가 대규모 공급으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선회했는데 이제 와서 3기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기라도 하면 굉장한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 투기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광명·시흥지구만은 일벌백계의 선례를 남기도록 지정을 취소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비슷한 투기 의혹이 많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수면 위로 올라와 전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된 적은 없다"며 "원칙을 세우고 올바른 선례를 만드는 일이 주택공급계획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차피 2.4대책의 핵심은 공공재개발, 재건축 사업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대로 진행하면 된다"며 "광명·시흥지구 신도시의 7만 가구는 규모도 크지 않고, 아직 본격적으로 추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금 취소하더라도 매몰비용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