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정보로 투기 '뽐뿌'에 판결 제각각…경찰 수사 관건은?

부패방지법 위반 3건…매매대금 포함 추징부터 '무죄'까지
지가변동요인 엄격히 따져 추징액 12억→7억 3800만 깎아
공영주차장 차익 노렸다 언론보도에 '화들짝' 되판 공무원
도로예정지 매입 시 의원, 정보 '공개시점' 때문에…無罪

경기도 성남시 LH 경기지역본부 모습.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지역 '투기 의혹'에 대한 성난 여론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LH 해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공분이 식지 않는 데엔 선점 가능한 개발정보를 이용해 배를 불린 부당한 '특권'에 대한 분노가 컸다. 공공주택지구 선정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을 두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같은 투기가 LH 직원만의 일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주민들보다 한 발 앞서 다양한 개발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도 화살을 피하기는 어렵다. CBS노컷뉴스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투기에 이용해(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기소된 대법 판례를 살펴봤다. 이들은 가족·지인 등 주변인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형량 및 부당수익 추징은 제각각이었다.

연합뉴스
먼저 과천시 건설과에서 도로 편입, 도로점용허가 등의 건설행정을 담당하던 A씨의 사례가 있다. 과천시는 지난 1999년부터 갈현동 일대 주민들이 '진입도로 부재로 인한 역주행 과정에서 교통사고 위험이 있으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져 2001년 4월경 도로개설계획을 비밀리에 확정한 상태였다. 과장 대리 시 결재를 대신하기도 했던 A씨는 도로개설 예정지 인근 토지를 매입하기로 맘먹었다.

A씨는 예정지와 매우 인접한 맹지와 전매토지 등 약 1600㎡를 2002년 2월 3억 7천만원에 사들였다. 땅을 내놨던 소유주는 물론 도로가 들어설 거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도로개설사업은 그 직후 관보에 공고되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그는 '땅값이 올라 나중에 되팔게 되면 이익을 나누자'고 동생과 조카, 처제 등을 꼬드겨 합계 2억 8천만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3년 9월, A씨는 전매토지를 16억 5천만원에 되팔아 무려 12억의 차익을 남겼다. 그는 친지들에게 빌린 금액을 2배씩 갚고도 돈이 남아 다른 곳의 부동산까지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씨는 토지거래계약 허가를 신청할 당시 주재배예정 작목란에 '무·배추·야채류'를 적은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토지 매입과정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농업경영계획서를 낸 후 용버들 등을 심은 LH 직원들의 투기행태와 '판박이'다. 현행 농지법은 1000㎡ 이상의 농지를 사들일 때엔 소유 목적을 밝히도록 돼 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LH 직원 투기 의혹 토지에 나무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12억원을 선고했다. 수원지법은 "당시 공무원의 신분임에도 전매토지의 매수대금인 4억 5천만원을 모두 차용해 마련한 사실, 전매토지에 전혀 영농을 하지 아니한 채 전매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며 "영농의사 없이 부정한 방법으로 토지거래계약 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장래 지가의 급등에 의해 충분히 예상되는 기대이익을 취했음은 분명하고, 그러한 이익은 부패방지법에 따라 가액 상당을 사후에 평가해 추징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토지를 팔기 전인 2003년 7월 전매토지 등에 관한 개발제한구역 해제예정공고가 있었고 이에 따른 지가변동은 취득 당시 예상된 기대이익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밝혔다. 지가상승 요인을 엄격하게 따진 것이다.

이에 따라, 차익(12억)에서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지가변동액 4억 6천만원을 제한 7억 3800만원만을 추징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A씨의 형량은 징역 1년 반으로 감형됐고, 대법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감사원 조사를 받기도 했던 그는 '맹지로서 경제적 투자가치가 높지 않았다'며 매도액을 16억 5천에서 9억으로 깎는 허위진술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가까운 이들의 명의를 끼워넣는 '꼼수'도 사용됐다.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3년 6월까지 평택시청 교통행정과장을 지낸 B씨가 그 예다. 평택시는 2012년 10월 고질적 '주차난' 해소를 위해 차량 60대를 주차가능한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기로 확정했다. B씨는 이 사실을 같은 친목단체 소속인 B씨에게 귀띔하며, '예정부지를 싸게 샀다가 평택시에서 수용할 때 비싸게 되팔자'고 제안했다.

이에 B씨와 C씨는 2012년 11월 각각 외삼촌과 동서를 명의수탁자로 내세워 이들과 공동명의로 주차장 조성예정지 2필지(1290㎡·1472㎡)를 7억여원에 매입했다. 토지 지분은 각각 70%, 30%씩 나누기로 했다. 땅값은 이들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된 2년 뒤 정확히 10억 이상이 뛰었다.

B씨 등은 토지매입 두 달 만인 2013년 1월 공영주차장 조성사업계획 유출로 이득을 취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마지못해 평택시에 부지를 되팔았다. 이들은 부패방지법 및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B씨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12억 추징, C씨는 징역 6개월 및 5억 추징을 선고했다. 추징금은 선고 당시 시가를 두 사람의 소유지분에 대입해 산출됐다. 재판부는 "자신의 소관업무를 통해 알게 된 개발정보를 이용해 적잖은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먼저 접근해 개발정보를 내밀며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하는 등 범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다만, 2심에선 추징액수에 대한 판단이 엇갈렸다. 재판부는 "B씨가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취득한 것은 토지 자체가 아니라 시가앙등이 예상되는 토지를 매수한 재산상 이익"이라며 "B씨는 해당 토지를 무상으로 취득하거나 취득케 한 것이 아니라 7억이라는 큰 돈을 매수대금으로 지급했다"고 봤다.

토지 전체를 매수하거나 가액을 추징하는 것은 매매대금까지 앗아가는 꼴이 돼 "헌법상 재산권 보장,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여지가 크다"고 밝히면서 추징액을 각각 6억 9천만원과 2억 9천만원으로 낮췄다. 가담자 C씨는 징역형도 집행유예로 깎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한 번 더 뒤집었다. 대법은 "주차장 예정부지라는 비밀을 알게 된 B씨가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아 시세가 낮게 형성된 기회를 타고 토지를 매수한 것이므로, 바로 그때 부패방지법 상 소정의 재물을 취득한 범죄가 성립한다. 시가 상승이 예상되는 재산상 이익이 아니라 토지 자체가 몰수 대상이 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아울러 "나아가 추징해야 할 가액도 이 사건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가 몰수 선고를 받았더라면 잃었을 이득액 상당액"이라며 "토지를 취득하면서 그 대가를 지급했다 해도 추징액에서 이를 공제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평택시 공무원의 투기는 약 1년 반의 지난한 재판 끝에 징역 1년 6개월과 매매대금까지 포함된 12억 추징이 확정됐다.

물론 업무상 관련성이 인정됐다고 모두 혐의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 동두천 시의원이었던 D씨가 단적인 예다.

동두천시청. 연합뉴스
D씨는 지난 2003년 말 동두천시가 시의회에 보고한 예산안을 통해 '평화로~중앙고 간 도로개설공사' 사업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심의·의결을 거쳐 해당 사업에 예산이 배정되자, 2004년 2월 예정지에 편입된 지행동 토지 2288m²를 E씨와 9억 2300만원에 공동매입했다. E씨와 아내의 명의로 절반씩 소유권 이전등기도 마쳤다.

업무상 정보를 이용한 것이 명백했지만, 놀랍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의정부지법은 "도로개설에 대한 예산배정여부는 사업 착수를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토지 시가를 형성하는 주된 기준이므로 외부에 공개되기 전까지 부패방지법 상 비밀에 해당한다"면서도 정보가 비밀성을 잃은 시점을 문제삼았다.

검찰은 토지매입으로부터 반년 이상이 흐른 2004년 9월 일간지를 통해 사업내용이 보도된 것을 공고시점으로 본 반면 재판부는 매입 약 1주일 전 동두천시보와 경기도보, 시 홈페이지 등에 재정운영상황을 게시한 사실 등을 들어 해당정보가 외부에 공개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비밀인 정보를 이용해 계약 교섭에 나갔으나 비밀성이 상실된 직후 물건을 매수하고, 그로 인해 물건의 시세는 실질적 재산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공직자가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불합리한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같은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수범 처벌규정 또는 그에 상응하는 특별규정을 두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찜찜한' 무죄임을 일면 시인한 셈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결국 경찰을 중심으로 꾸려진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의 LH 관련 수사에서도 미공개 정보 내용과 이용 시점 등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를 촘촘히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LH 직원들의 경우 직접적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발뺌'하는 이들이 많은 데다 '차명 거래'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LH 직원들이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토지를 취득했다면, (기소된 지자체 공무원들과) 마찬가지의 형을 받거나 더 큰 형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이 입증이 잘 되지 않으니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농지법 위반'이 제일 조사하기 쉬운 만큼 허위영농계획서를 갖고 토지를 취득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다음 LH 직원과 친인척이 있는지 살펴보면 차명거래 관련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농지법 위반으로 (먼저) 입건해 처벌하고, LH 및 공무원과의 관련성도 수사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