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국가 폭력에 맞선 '모리타니안'의 용기

영화 '모리타니안'(감독 케빈 맥도날드)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모두를 슬픔에 빠뜨린 재난 앞에서, 국가 권력은 종종 개인을 희생양 삼아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폭압에 자유와 용서를 기치로 맞서는 개인의 존엄은 권력보다 더 빛나고, 폭력의 주체인 국가나 이를 묵인한 이들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모두의 반대에도 9·11 테러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의 변호를 맡는다. 슬라히(타하르 라힘)는 기소도, 재판도 없이 6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은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은폐돼 있고, 낸시와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는 국가가 가리려는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슬라히의 유죄를 확신하고, 낸시는 슬라히의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

'모리타니안'(감독 케빈 맥도날드)은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다.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는 기소도, 재판도 없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 만에 설치된 미군 기지 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혔다. 9·11 테러 주동자라는 혐의를 받았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슬라히의 '자백'을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다. 그 자백은 거짓이다. 진실은 슬라히가 고문과 협박에 의해 미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거짓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영화는 낸시가 슬라히를 만나 문제를 해결하면서 겪는 부당성, 슬라히의 결백 그리고 정부의 거짓을 하나씩 드러내는데, 이 과정을 스릴러물처럼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단서들, 그리고 슬라히가 자국 경찰에 체포되기 전 보인 행동들은 슬라히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일단 그는 알카에다와 얽힌 과거가 있고, 그런 그의 행동은 수상쩍어 보인다. 슬라히를 의심하는 시선에서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시작된다. 두려움 앞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말이다.

'모리타니안'은 모리타니안 슬라히가 중심인 영화다. 슬라히를 통해 9·11 테러라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사상 초유의 테러와 그로부터 파생된 두려움, 슬픔 앞에 국가와 개인이 어떻게 마주 서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국가적 재난과 이에 대한 공포를 돌파하기 위해 슬라히라는 인물을 표적 삼아 그를 9·11 테러 주동자로 만들어낸다. 알카에다와 연관된 작은 연결 고리라도 있으면 모두 엮어 가상의 가해자를 세우고 벌하면서 정의라는 명목 아래 희생양을 만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슬라히가 진짜 주동자인지가 아니다. 진실도, 정의도, 법도 뒷전이다. 그저 난국을 타개하는 데 필요한 희생양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거기에 걸려든 이가 슬라히다.

슬라히는 미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구금되며 자신조차 몰랐던 '테러범'이 돼 간다. 이 과정에서 슬라히는 각종 고문과 협박을 받는다. 누군가의 정의를 위해 슬라히의 정의는 짓밟히고,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신까지 말살하는 폭력과 공포 앞에 슬라히는 무너지는 듯하면서도 다시 일어난다. 그는 공포를 공포로 넘어서지 않고 용서와 인간성으로 극복한다.

슬라히의 무죄 혹은 유죄를 입증하려는 이들도, 9·11 테러의 공포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슬라히와 슬라히를 둘러싼 정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자 노력한다. 낸시와 카우치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동료를 희생시킨, 국가적 재난이 몰고 온 슬픔 앞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개인적 감정을 바탕으로 복수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진실을 마주하려 한다. 그것이 비록 대다수 사람으로부터 외면받고 손가락질당하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카메라가 때때로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을 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보인다. 미국의 상징들, 슬라히를 압박하는 수갑, 폭력으로 생긴 상처들, 진실 앞에 선 개개인의 눈동자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해 탄생한 미국 헌법의 가치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은 누구이며 어떻게 훼손되는지 등을 담아낸다.

현재와 달리 슬라히가 어린 시절, 독일 유학 시절, 관타나모에서의 회상, 그리고 현실과 회상이 뒤엉킨 장면들은 4대 3 비율로 축소돼 구현된다. 특히 관타나모 회상 장면이 축소된 비율로 그려지는 순간, 그 안에서 겪은 숨막히는 공포와 압박감 등이 보다 생생하게 전달된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죄 없는 희생양이 생겨나고, 이 과정에서 진짜 국가가 지켜내야 할 정의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부서지는 건 우리나라 역사에도 기록된 낯설지 않은 일이다.

그때마다 피해자는 어떤 선택을 했고,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그 과정을 지켜봤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인권이 짓밟히는 과정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은 슬라히의 모습은 국가 폭력을 마주했던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원 데이 인 셉템버' '라스트 킹'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라이프 인 어 데이' 등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현실을 조명하고 스릴러를 표현하는 데도 뛰어난 케빈 맥도날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타하르 라힘, 조디 포스터, 베네딕트 컴버배치, 쉐일린 우들리 등이 열연을 펼쳐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다.

129분 상영, 3월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모리타니안' 포스터. ㈜퍼스트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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