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형제복지원 사건, 인간 존엄성 침해"…비상상고는 기각

비상상고 이유 적합하지 않아…법리적 문제로 기각
재판부 "국가가 대규모 인권유린 묵인·비호" 책임 인정
1980년대 가해자에 무죄 선고한 판결 비판하기도
박준영 변호사 "국가배상소송 단초 될 것" 의미부여

감금과 강제노역, 암매장 등을 자행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된 가운데 11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
노약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감금과 강제노역, 암매장 등을 자행한 형제복지원 사건의 재판이 32년 만에 다시 열렸지만 결국 법리적인 문제로 기각됐다. 다만 대법원은 국가가 "대규모 인권유린을 묵인하고 비호한 사건"이라고 반성의 뜻을 밝히며 손해배상의 길을 열어뒀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확정 받은 고(故)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해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해당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할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제기하는 절차다. 원판결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경우에는 판결을 파기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다시 재판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법령의 해석·적용의 과오를 시정하는 데 그친다. 다만 이를 통해 사건관계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거나 손해배상의 계기를 만드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위법한 법령해석으로 무죄를 받았던 박 원장 사건을 다시 봐야 한다는 취지였기 때문에, 법령해석을 바로잡아 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사건은 형사소송법에서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2018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비상상고 이유로 제시한 것은 부랑인 단속·수용과 관련된 내무부 훈령의 위헌성이었는데, 문제가 된 판결에서는 해당 훈령이 직접 적용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해당 훈령은 다른 법률 적용의 전제가 되는 사실로 쓰인 경우이기 때문에 비상상고의 요건에 맞지 않게 된 셈이다.

다만 대법원은 법리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기각을 선고하면서도 형제복지원 사건이 '권위주의 시절 국가가 자행한 인권침해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

감금과 강제노역, 암매장 등을 자행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된 가운데 11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
재판부는 "당시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건전한 도시질서를 확립한다는 기조 아래 부랑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인권유린이 행해졌다"며 "복지국가를 내세우면서도 아동과 장애인 등 빈곤과 질병에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단속하고 격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제복지원의 보호라는 이름 아래 폭력이 동반된 감금과 노동력 착취를 국가가 묵인하고 비호했다"며 "이러한 국가적·사회적 상황을 살피지 않고 (박인근의) 특수감금죄 여부만 단편적으로 논의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과거 두차례나 박 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특히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순히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사건의 성격과 인권침해의 정도를 고려할 때 피해자들에게 어떤 권리를 창설해서 주는 의미가 아니라 마땅히 보장됐어야 할 권리를 돌려줄 필요가 있다. 더 구체화된 피해회복 조치가 취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기각' 판단을 들은 후 선고 현장에 온 피해자들은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울부짖기도 했다. 다만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향후 국가배상소송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재판부가 이유를 충실히 밝힌 점에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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