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훔친 몸의 혼동과 충돌…나를 묻는 '포제서'

영화 '포제서'(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

외화 '포제서'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 스포일러 주의

표면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건 나의 신체다. 그리고 진짜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자아 정체성이라 불리는 의식일 것이다. 그러한 나의 신체를 누군가가 강탈하고, 타인의 의식이 스며든다면 '나'의 소유주는 누가 되는 것일까.

타인의 몸을 훔쳐 의식에 침투해 암살 도구로 사용하는 조직 포제서는 주로 고위층 암살 업무를 맡는다. 타인의 몸을 도용하기에 증거인멸 절차도 필요 없다. 타깃을 제거하면 호스트가 스스로를 제거하도록 해 임무를 완성한다.

도용한 몸에서 지낼 수 있는 제한 시간은 3일이다. 이 기한을 넘기면 호스트의 인격에 동화돼 요원의 정신이 몸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임무가 끝나면 추억이 깃든 물건을 통해 요원이 호스트의 인격에 동화됐는지 확인하는 '기억 검증'을 실시한다.

외화 '포제서'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주인공 타샤 보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최고의 포제서 요원이다. 보스는 오랜 임무를 통해 타인의 신체를 오가는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지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자아가 타인의 신체·자아를 오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듯 보스는 자신의 가족 앞에 나서기 전에 자기 자신을 연습한다. 보스는 타인의 몸에 들어가기 전 대상이 된 타인의 말투를 연극 무대에 서게 될 배우처럼 연습하는데, 자신이 '보스'로서 할 말조차도 연기하듯 대사와 억양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연습한다.

영화에서 보스가 임무를 수행하는 전체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건 새 임무의 호스트 콜린 테이트(크리스토퍼 애봇)를 통해서다. '가족 비극'이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미국 최대 기업의 CEO를 암살하려 한다.

암살자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몸에, 여성인 보스가 남성인 콜린의 몸에, '나'라는 인물이 '타인'의 의식에 침투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자아 정체성이 맞부딪히는 일이다.

보스는 타인이 되는 걸 경계하지만 내면에서 콜린의 자아와 마주치며 혼돈에 빠진다. 이미지의 일부를 잘라내 다른 이미지에 붙여 넣었다가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는 게 사이버 세상에서는 간단한 일일지 몰라도 인간의 자아는 그렇게 간단하게 복사하고 복구할 수 없다.


외화 '포제서'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과정에서 두 신체가 녹아내려 혼합되고 떼어지고 재구성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영화는 콜린의 행동이 콜린의 의지인지, 아니면 보스의 의지에 따라 조종되며 나오는 행동인지 혼동하게 만든다.

이러한 혼동을 앞선 보스의 행동에 대입해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타깃을 제거할 때는 권총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보스는 다른 도구를 이용해 대상을 몇 번이고 난도질한다. 이 역시 보스의 자아가 내린 선택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가 침투한 호스트의 선택일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리고 호스트의 몸을 통해 저지른 살인의 주체는 보스다. 보스의 의식이 선택한 결과물이지만, 표면적으로는 호스트가 저지른 살인이 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콜린이지만, 정말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보스라 해야 하는 걸까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된다.

보스가 타인의 육체에 접속하는 과정은 자신의 육체가 녹아내려 타인의 육체로 재구성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콜린의 자아와 보스의 자아가 충돌하며 서로의 정체성을 주된 정체성으로 세우려 할 때도 신체가 녹아내리고, 서로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외화 '포제서'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속 주요하게 등장하는 상징 중 하나가 '나비'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나비는 문학이나 예술작품에서 종종 '영혼' 혹은 '자기 자신'을 상징한다.

또한 생애 주기 동안 거듭 모습을 바꾸고, 껍데기에서 나와 새로운 형태의 진짜 자기 모습을 찾는다는 점에서도 '포제서' 이야기와도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특히 영화 후반, 콜린과 보스의 아들이 죽어 흘리는 피가 만나 마치 나비처럼 보이는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라는 정체성과 자기 의지를 묻는다는 점에서는 '공각기동대'를 떠올리게끔 만든다. 그러나 '포제서'는 SF적인 면을 지녔지만, 고전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다. 타인의 몸에 칩을 넣어 이를 통해 신체 주인의 의식에 침투한다는 사이버 펑크 이야기는 피와 붉은색 조명 등 강렬한 색감, 그리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전위적인 구성을 통해 그려진다.

하드고어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해 이러한 장르가 보기 불편한 관객이라면 관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포제서'를 연출한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은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아들이다. 닮은 듯 다른 부자지간의 연출 스타일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103분 상영, 3월 11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포제서' 포스터.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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