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영화 '스파이의 아내'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 영화팬들과 만나게 된 소감을 전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1940년 전쟁의 암운이 드리운 시대,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가 만주에서 목격한 엄청난 비밀을 세상에 알리기로 하자 아내인 사토코(아오이 유우)가 이를 만류하며 벌어지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큐어' '도쿄 소나타' 등을 연출한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최초의 시대물인 '스파이의 아내'로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또한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 잡지 키네마준보가 2020년 최고의 일본 영화로 뽑았다.
"지금까지 주로 현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현대 사회를 무대로 하면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고 자유인지 또렷하게 제시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영화가 끝난 경우 많았기에, 전쟁 중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전부터 시대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일본 오사카 만에 자리 잡은 도시 고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감독은 항구도시이기도 한 고베는 전쟁 중임에도 해외 무역이 빈번했고, 외국에서 다양한 정보와 물건이 자유롭게 오갔던 도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특성이 영화의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지리적 배경을 고베로 설정하게 됐다.
첫 시대물 영화를 연출한 경험에 관해 구로사와 감독은 "현대극과 가장 달랐던 점은 각본에 쓰인 대사 자체가 현대어와 전혀 다른 예스러운 말투라는 점이다. 다른 영화라면 애드리브를 할 수 있고 현장에서 떠오른 것들을 넣기도 하는데, 이번 영화는 현장에서 즉흥적인 변경이 허락되지 않았다"며 "각본대로만 해야 한다는 건 제약이기도 했지만, 완벽하게 영화 전체를 컨트롤해서 만든다는 것, 그러한 촬영 자체가 재밌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앞서 이런 부분에 관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미 드러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점에 있어 특별히 대단한 각오는 필요 없었고 단지 사실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서스펜스라는 장르와 역사적 사실 사이에서 감독은 "영화에는 굉장히 큰 테마, 큰 이야기가 들어있기에 가능하면 그 이야기들을 설명하면서 일상생활만으로도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며 "일상을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전하려는 주제를 전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두 사람의 대사만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려 했다"며 "그 이상으로 표현하려고 해도 예산의 문제가 있었기에, 영상들 안에서 아내의 눈으로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영화의 제목이나 감독의 말처럼 '스파이의 아내'는 유사쿠가 아닌 그의 아내 사토코를 통해 전개된다.
감독은 "이야기 속에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변들, 생각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기게 된다. 그런 것들이 일상에 뛰어 들어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만든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호러, 서스펜스 영화 효과와도 유사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구로사와 감독이 아오이 유우와 타카하시 잇세이를 캐스팅한 가장 큰 이유는 '연기력'이다. 감독은 "일본에 많은 배우가 있지만 여배우 중 가장 뛰어난 배우는 아오이 유우, 남배우 중에서는 타카하시가 최고의 연기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한 연극적인 연기와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두 사람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구로사와 감독은 한국 관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에서 개봉하게 하는 게 저에겐 매우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대국이라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드는 한국의 관객분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 매우 궁금합니다. 봐주시는 것 자체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 영화 중에서도 이렇게 특이한 영화가 있다는 걸 느껴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마음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