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 김지희 PD, 구성 : 윤다조 작가
■ 진행 : 김희송 5.18연구교수
■ 방송 일자 : 3월 9일 화요일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희송> 유명 프로야구 선수가 학창 시절 후배들에게 도를 넘는 학교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는데요. 실제 피해 사실을 밝힌 A씨와 직접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하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희송> 힘든 결정 해주셨습니다. 피해 기억이 좋은 기억은 전혀 아닐 텐데요. 어떻게 당시의 상황을 말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신 다면요?
◆A씨> 저도 처음에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삶도 그렇게 녹록지는 않고, 일하고 살기도 바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요즘 폭력 미투 사건을 접하시면서 그 때를 떠올리시고 구단에 항의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가해 선수는 기억이 안 난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습니다. 이런 답변을 들은 것을 시작으로 폭로를 결심했습니다.
◇김희송> 최근에 스포츠계, 연예계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미투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과거 그런 피해 사실을 고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는지요?
◆A씨> 아니요. 수도 없이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것은 야구계의 다른 인맥들, 제가 알고 있는 다른 선수들이나 감독, 코치님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라고 할 수 있겠고요.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제가 이것을 폭로했을 때 그분들에게 미칠 영향이 좋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김희송> 당시의 사건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질문드리기가 조심스럽고 죄송합니다만, 당시로 돌아가 본다면요, 가해 선수와 어떤 관계였나요?
◆A씨> 중학교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김희송> 가해 선수가 구체적으로 어떤 폭력행위를 저지른 건가요?
◆A씨> 가장 기억에 크게 남는 것은 돈 갈취 그리고 구타입니다.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고요. 물고문을 하고요. ‘원산폭격’이라고 해서 뒷짐 진 자세로 머리를 땅에 박고 버티는 자세를 시켰고요. 저는 그 선배의 악력에 의해서 강제로 왕따를 당했고 또 다른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숨죽여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김희송> 가해 선수에게 피해를 입은 때가 정확하게 언제인가요?
◆A씨> 2002년 겨울, 제가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시절부터 2003년 그 선수가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라고 기억합니다.
◇김희송> 그렇다면 가해 선수에게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선수들이 있을까요?
◆A씨> 네, 또 다른 선수들이 있습니다.
◇김희송> 그러면 이런 피해를 본 학생들은 혹시 어떤 대응을 했었나요?
◆A씨>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요. 지금은 제가 폭로하면 힘을 실어주겠다는 친구들은 있습니다.
◆A씨>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김희송>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A씨> 제가 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해서 항상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살았는데요.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지역에서 운동을 계속하려면 한 선수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똑같은 선배들과 긴 시간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어야 도움을 요청하고 그런 악랄한 짓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항상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래왔었고 사건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저는 피부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제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살았어야 했습니다.
◇김희송>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고 보는데요. 많은 분이 왜 체육계에서 이런 폭력과 인권침해 문제가 근절되지 않을까 궁금해하는데요. 아마 방금 말씀해주셨던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언제 처음 이런 피해 사실을 알렸나요?
◆A씨> 제가 알린 것은 아니고요. 당시 그 가해 선수가 저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한 가혹 행위가 학교 내에서 너무 크게 사건화됐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이런 일들을 알게 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희송> 지금 피해를 이야기하고 계시는 A씨의 일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이 누구나 알만한 사건이었다는 말씀인데요. 그렇다면 당시에도 가해 선수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감독이나 코치들이 모를 수가 없었을 텐데요. 가해 선수에게는 어떤 구체적인 조치가 있었나요?
◆A씨> 특별한 조치는 없었고요. 당시 그 선수가 우리 학교의 ‘에이스’ 축에 들었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감독, 코치님들은 그 선수를 감싸고돌았습니다. 화가 나서 사건화하려는 학부모들을 달래면서 아직 어린아이가 생각 없이 한 일이라고 학부모들에게 주의를 줬고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도록 쉬쉬하며 넘어가려고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희송>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이런 학교폭력에 지속해서 노출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들이었나요?
◆A씨> 살면서 계속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또 우리 사회 인식상 ‘피해자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라며 피해자에 버티라고, ‘그 정도는 버텨야지’, ‘그 정도도 못 버티면 어떡하냐?’ 그런 프레임을 억지로 덮어씌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었고요.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서 제가 억지로 그것을 연기해야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김희송> 폭력은 늘 가해자가 문제지, 피해자가 그 책임을 떠안을 이유는 전혀 없는데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근 이런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관련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고, 또 직접 관련해서 사실을 이야기해 주시고 있는데요. 조금 전에 말씀해주시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사건들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씨> 1등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인 인식과 운동을 하는 사람은 운동만 잘하면 살인을 해도 용서해주는 ‘영웅 우상화’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씨> 학교 내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초중고를 계속 같은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는 점, 그 속에서 강하게 박혀있는 내리갈굼 문화입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확률이 높으니까 피해를 호소하고 싶어도 역으로 가해자가 될 것을 염려하면서 쉬쉬하고, 그렇게 이 끝낼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돼 버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희송> 어린 시기에는 피해자일 수 있는데, 학년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쉬쉬하는 문화가 있다는 거죠?
◆A씨> 네.
◇김희송> 한편 가해 선수와 과거 폭력 행위를 두고 최근에 통화를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처음 통화를 했을 때 가해 선수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A씨> 지금도 생각을 하면 머리털이 다 솟는데요. 어린 시절 장난일 뿐이었는데 저만 그것을 폭행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 했습니다. 그 당시 분위기도 그렇고 전혀 장난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김희송> 그렇다면 지금 가해 선수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A씨> 평생 속죄하면서 살 것, 유니폼을 벗을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고 내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받을 것. 더 있는데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김희송> 통화 이후 가해 선수 측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보상을 요구했다는 식의 대응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진실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씨> 제가 정확하게,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애초에 폭력 미투를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선수가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저와 상의도 없이 우발적으로 구단에 전화하신 것이고 내용을 들어보니까 상대측 변호사가 대화를 자꾸 그런 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저는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는 저희 어머니를 베테랑 변호사가 회유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못을 확실하게 박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 선수가 유니폼을 벗는 것’, ‘야구를 그만두고 텔레비전이나 그 어떤 매체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을 살 것’,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갈 것’입니다. 그리고 돈은 내가 줄 테니까 우리 엄마 그만 괴롭히면 좋겠네요. 제가 이 말을 지금 CBS에서 하지만 이후 허위사실이 유포된다면 명백하게 법적으로 책임을 묻겠습니다.
◇김희송> 최근 스포츠 미투와 관련해서 팀 퇴출이나 국가대표 자격 박탈 등의 조치가 내려지고 있는데요. 이런 대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씨>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요. 학창 시절 특히 운동선수들이 법에 관해서 접촉할 기회가 전혀 없고 폭력을 당하더라도 어떻게 그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폭력이 중대한 범죄라고 인식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7년 정도가 지났을 테고요. 너무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려서 표면적으로는 나는 극복을 했다는 착각 속에서 다시 사회로 돌아가게 됩니다. 저도 그랬었고요. 지금 폭력 미투를 보더라도 형사적인 처벌을 할 수가 없는 게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A씨> 어른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지, 몸에 없던 멍 자국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자세하게 살펴봐야 하고요. 문체부나 교육청 같은 고위조직에서 주기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학생 한 명 한 명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생활 중 폭력을 저지른 학생에게는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하는 게 당연히 맞고요. 만약 가해 학생을 그냥 아직 어리다고 치부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하게 된다면 가해 학생과 그 주변 친구들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주게 돼 죄책감이 없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주 정확한 예로 제가 지목한 프로야구선수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희송> 폭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야 하는데요. 지금 선생님께서도 용기 내서 관련 사실을 말씀해주고 계시는데요.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씨> 저도 피해자였고요. 피해자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거예요. 피해를 입은 피해자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고요. 사회의 건강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오히려 피해를 받은 것에 대해 당당함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들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러한 미투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김희송> 이런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씨> 앞서 이 일이 다른 친구에 의해 당시 학교에 알려졌다고 말씀드렸는데요. 18년 전 저와 함께 운동했던 친구는 그때 당시 많이 두려웠을 테지만 용기 내서 사실을 말하고 그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뒀습니다. 반면에 18년 전 저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 긴 기간 동안 저는 자신을 바보라고 저 자신을 탓하고 억누르고 외면하면서, 스스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가해 선수의 빛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반짝반짝한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야구가 당연히 싫어졌고 텔레비전은 뉴스를 제외하곤 보지도 않습니다. 저한테 문제가 있는 줄로만, 또 제가 사회생활을 그리고 대인관계를 전혀 못 하는 줄로만 알고 살았었습니다. 실제로 주변 지인들의 경조사에 저는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것을 18년이 지나고 최근의 사건들과 당시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번 폭력 미투 사건을 보면서 깨달았고요. 그리고 저에게 이런 기억을 심어준 그 사람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는 이 기회를 저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면 이제는 18년이 아니라 30년, 40년 고통 속에서 살다가 저만 바보가 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 있게 폭력 미투를 시작해주신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아직 드러내길 꺼리시는 분들에게는 저의 한걸음이 그분들의 현명한 판단에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한창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을 어린 친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데요. 아직 판단력이나 표현력이 많이 부족한 그런 시절이에요. 저도 그때는 그랬고, 저는 그때 말하지 못해서 과거에 겪은 폭력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기억은 영원히 저의 기억 한편에 남아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용기 내서 말하고 음지에서 나오셔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기 바라고, 저와 같은 인생은 살지 않길 바랍니다.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해를 저지른 학생들은 잘못한 점을 확실하게 깨닫고 피해 학생에게 용서를 받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인생의 아주 중요한 순간에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땐 왜 그랬지 하며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김희송> 아픈 기억인데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하고요. 이런 용기가 스포츠계의 폭력을 근절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A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