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종목 사상 최대 우승 상금이 걸린 마지막 승부. 6일 오후 8시 시작돼 7일 자정을 넘긴 대접전이 팬들의 가슴을 들었다 놨다 쫄깃하게 펼쳐졌다. 최종 9세트까지 가는 혈투 속에 스페인 청년 다비드 사파타(29·블루원리조트)가 '헐크' 강동궁(SK렌터카)을 제치고 초대 왕중왕전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사파타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고, 현장에서 지켜보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팀 동료 서한솔과 에디 레펜스(SK렌터카),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등은 우승까지 힘겨운 과정을 이겨낸 사파타에게 눈물로 축하를 보냈다.
비록 현장에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사파타의 우승에 감동한 이가 있었다. 바로 1만km 떨어진 이역만리 스페인 현지에서 원격 응원을 보낸 여자 친구다.
카밀리 오초아(21)는 연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현지 시각으로 이른 아침부터 경기를 지켜봤다. 발렌시아 인근 바로 남자 친구의 집에서였다. 오초아의 간절한 표정은 경기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됐다.
오초아의 염원이 랜선을 타고 사파타에게 전달이 됐던 걸까. 사파타는 치열한 승부를 이겨내고 마침내 PBA 왕중왕에 올랐다. 마지막 9세트 사파타가 12점을 연속으로 따낼 때부터 오초아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우승이 결정되자 오초아는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감동을 함께 했다.
하지만 1만km 밖에서 날아온 오초아의 눈물과 지고한 정성에 당구의 신도 감동한 걸까.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감정이 사무쳤는지 사파타는 더욱 힘을 냈다. 특히 오초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9세트에는 그야말로 신들린 샷을 잇따라 구사해냈다.
경기 후 사파타는 "오초아가 항상 응원해주는데 멘탈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이번에도 경기가 있든 없든 영상 통화로 크게 힘을 실어줬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어 "오초아와 함께한 지는 1년 반 정도 됐다"면서 "(PBA 대회를 치르느라) 3개월이나 떨어져 지냈는데 너무 보고 싶다"며 절절한 애정을 과시했다.
공교롭게도 사파타는 한국의 예비 신랑들을 거푸 꺾었다. 4강전에서는 늦깎이 예비 신랑 김재근(크라운해태)의 돌풍을 잠재웠다. 이번 대회를 끝내고 결혼식을 올린 김재근은 우승컵을 신부에게 선물하려 했지만 아쉽게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사파타는 또 결승에서 역시 지난해 코로나19로 미뤄진 결혼식을 준비 중인 강동궁을 넘었다.
다만 사파타의 결혼식은 미정이다. 둘 다 아직 20대. 사파타는 오초아와 장래에 대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결혼 계획까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예비 신랑들을 제치고 우승 상금 3억 원을 거머쥔 사파타. 연애와 결혼을 구분할 줄 아는 스페인 신세대의 사랑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