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집에서 태블릿PC를 의자 밑에서 숨어서 보고, 구석에 들어가서 고개만 내민 채 텔레비전을 보더라고요. 이전에는 안 그랬었는데, 어린이집 학대시기에 이런 행동들을 했어요."
'제주 어린이집 학대 사건' 한 피해 아동의 학부모 A씨가 9일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의사 표현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3세에 불과했던 아동은 학대의 고통을 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변을 보면 저나 할머니한테 '똥 냄새'라고 말해서 기저귀를 갈아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변을 본 것을 만지고 몸에 묻히더라고요.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그런 버릇은 없어졌어요."
"키즈 카페에 갔는데, 아이가 갑자기 '엄마 싫어, 오빠 싫어' 이러면서 엉엉 울더라고요. 갑자기 왜 이러지 싶었는데 옆에 학대 교사랑 비슷하게 생긴 교사가 있더라고요. 가슴이 아팠어요."
A씨의 자녀와 같이 3세반에서 학대 피해를 당한 아동의 부모 B씨도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우리 애가 갑자기 머리를 바닥에 박거나, 자기 얼굴을 마구 때리는 거예요. 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당시에는 아이가 학대를 당한 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번 사건 피해 아동들의 '이상 행동' 사례를 접한 전문가는 학대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부 유지숙 교수는 "아이들이 무섭고 겁에 질리는 등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일이 있다면 발달 단계가 퇴행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개 부모에게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면 퇴행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계속 이상 행동에 머무르며 고착화되면 아동 발달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15일 2세에 불과했던 피해 아동이 누가 잡아당긴 듯 양 귀에 피멍이 든 채로 집에 돌아왔고, 다음날(16일) 학대를 의심한 학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학대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지난달 2월 15일까지 어린이집 내 폐쇄회로(CC)TV 15개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교사들이 1세부터 3세 사이의 원생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한 정황을 확인했다.
영상 속 교사들은 수시로 원생들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뒤통수를 쳤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이 확인한 교사들의 신체적 학대만 100여 건이다. 피해 아동은 13명에 달한다.
특히 교사들은 청각 장애 아동뿐만 아니라 원장의 손녀를 상대로도 신체적 학대를 가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 정황도 포착했다. 교사들이 원생에게 벽을 보고 있으라고 하거나, 다른 원생을 혼내는 것을 지켜보게 하는 장면이 영상에 담긴 것이다.
현재 신체적 학대만으로도 보육교사 12명 중 5명이 입건된 가운데 수사 결과에 따라 피의자와 피해아동 수가 더 늘어날 수 있어 학대를 둘러싼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학대 사실이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알려지며 공분이 일자, 어린이집 측은 사과문을 통해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에 대해 큰 충격을 드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어린이집은 지난해 1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육진흥원 평가에서 최고점인 A등급을 받았다. 보육과정 및 상호작용, 보육환경 및 운영관리 등 모든 평가 영역에서 '우수' 등급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