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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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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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최말자(재심 청구인)
그 사건 그 후가 궁금하다. 화요일의 코너 AS뉴스입니다. 작년 5월이었습니다. 70대 한 어르신이 여성단체의 문을 두드립니다.
“50여 년 전에 내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인 남성이 피해자가 됐다.” 이렇게 호소를 합니다. 우리에게는 ‘혀 절단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이죠.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라는 영화로 제작이 되면서 우리에게 생생히 기억되는 사건.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에게 저항하다가 그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바로 그 사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 피해자 나이는 18살. 반세기가 지나서 70살이 넘은 피해자는 성폭행 정당방위를 주장하면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 이런 소망인 거죠. 하지만 얼마 전 나온 재심 결과는 기각이었습니다. 오늘 AS뉴스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 씨를 직접 연결해 보겠습니다. 최말자 선생님 나와계세요?
◆ 최말자>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좀 더 기분 좋게 인터뷰 했으면 좋았을 텐데 좀 마음이 아프네요.
◇ 김현정> 다리가 아파올 때까지 산을 다니고 몸을 피곤하게 해야만 비로소 잠을 청하실 수 있었군요?
◆ 최말자> 네.
◇ 김현정> 청취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저희가 1964년 그때로 한번 돌아가보겠습니다. 다시 생각하시기 참 아픈 기억이겠습니다마는 18살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최말자> 그날 저녁에 나를 아는 친구 둘이 우리 집을 밤에 오는데 이 남자가 한 친구 뒤를 따라왔어요. 뒤에 남자가 따라와서 밖에서 서 있으니까 우리 친구 집을 보내기 위해서 그놈을 반대 방향을 거기까지 제가 데리고 나갔어요. 데리고 나갔는데 그 큰 길에서 나는 여기서 길을 알려줬으니까 나는 집으로 가야 된다고 돌아섰어요,
돌아서는데 내 뒤에서 내 양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두 다리를 걷어찼어요. 차니까 나는 사정없이 넘어졌죠. 넘어지면서 내 머리가 땅바닥 돌에 치이면서 정신을 잃으면서 누웠는데, 내 배 위에 올라타고 키스를 하다 보니까 손도 쓸 수도 없고 그 돌멩이에 다치다 보니까 정신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정신을 차리다 보니까 내 입에 뭐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뱉어버리고 집으로 그냥 도망을 왔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그 남성이) 집을 찾아와서 자기 혀를 찾아달라고.
◇ 김현정> 혀를 찾아달라고.
◆ 최말자> 찾아달라고 우리 집을 찾아왔어요. 30~40분 후에.
◇ 김현정> 선생님 그때 바로 신고를 하거나 그럴 생각을 못 하셨어요?
◆ 최말자> 신고가 뭡니까? 그 시대는, 아버지가 만약에 그 상황을 알면 맞아죽는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는데. 그런데 아버지가 그날 저녁에 집에 안계셨어요.
◇ 김현정> 여러분, 1964년입니다.
◆ 최말자> 그러다 보니까 그런 일이 벌어졌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가고 아버지가 오면 안 되니까 오기 전에 해결을 해야 되니까. 남동생이 손전등을 가지고 그 현장을 가서 (혀를) 찾아줬어요. 고발이고 그런 거를 떠나서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까 싶어서 몰래 그날 밤에도 있다가 날이 새기 전에 도망을 갔어요.
◇ 김현정> 오히려 피해자가 도망을 가신 거예요?
◆ 최말자>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까 봐 도망을 갔죠.
◇ 김현정> 왜 맞아 죽어요, 왜?
◆ 최말자> 그때는 무지하니까 그냥 무조건 가시나가 못된 짓했다고 머시마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거는 집안의 수치고 그러니까 때리죠. 맞아 죽죠, 그걸 알면. 그래서 도망갔어요.
◆ 최말자> 그렇죠.
◇ 김현정> 심지어 그 가해 남성,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는 누가 봐도 성폭행범이고 당장 경찰에 잡혀 가도 시원치 않을 그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를 계속 쳤다면서요?
◆ 최말자> 그렇죠. 나이 18살에 뭘 압니까? 겁이 나서 그냥 도망갔다가 3일 만인가 집을 찾아갔어요, 어쩔 수 없이. 찾아가니까 그 동네가 막 난리법석이 났죠.
◇ 김현정> 왜요?
◆ 최말자> 아니, 가시나가 밤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부 다 우왕좌왕하고요. 그런데 무슨 놈의 고소를 하고 고발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는 이 가시나 때려죽인다고 가시나 찾으라고 난리를 치고 그 길로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사를 했죠.
◇ 김현정> 수사 과정을 좀 듣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수사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됐습니까?
◆ 최말자> 경찰서에서는 (남성에 대해) 강간미수하고 특수 주거침입하고 그걸 같이 넣어줬어요. 그런데 검사가, 소환장 보낸게 7월 초쯤으로 알고 있어요. 내가 알고 있기로는, 기록은 없지만. 검찰 조사를 받고 그날 바로 구속을 시키더라고요.
◇ 김현정> 누구를요? 선생님을요?
◆ 최말자> 네. 그 뒤로는 무조건 가시나가 남자를 등신, 불구로 만들었다고 바른 말 하라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얘기했는데 내 말은 인정 안 하고. 그러고서 책상을 치고 일어서서 의자에 발을 얹고 손을 허리에 대고 이 년, 저 년 욕을 하면서 네가 남자를 불구를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왜 바른 말 안하노. 그러면서 욕을 하면서 네가 바른 말 안 하면 여기에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바른 말 하라. 그 말을 15번, 20번 이상 했어요.
◇ 김현정> 그 검사 얼굴이 기억나세요? 이름이랑?
◆ 최말자> 지금은 기억도 안 나고 이름도 기억이 안 납니다.
◆ 최말자> 그렇죠. 검사가 그렇게 주장했죠.
◆ 최말자>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 김현정> 그 남성은 처음 본 건 아니고 건너 건너?
◆ 최말자> 처음 봤죠.
◇ 김현정> 아예 처음입니까?
◆ 최말자> 나는 그날 저녁 처음 봤죠. 그날 저녁에 생김새만 봤죠.
◇ 김현정> 그러니까 생전 처음 본 남성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키스를 하도록 유도를 한 것이므로 이것은 강간이 아니고.
◆ 최말자> 그거는 검사가 한 말입니다.
◇ 김현정> 오히려 혀를 자르는 행동을 한 것만이 중상해 죄다, 지금 이렇게 판결이 난 거네요, 결국?
◆ 최말자> 그렇죠. 그렇게 해서 앞에 보면 사건 과정을 얘기하는데 전부 다 자기들이 꾸며 놓은 거예요.
◇ 김현정>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이?
◇ 김현정> 결국 그래서 중상해죄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을 하신 거죠?
◆ 최말자> 그렇죠. 그거를 뒤집어씌웠으니까. 그럴 수밖에요.
◇ 김현정> 그러면 그 남자 노 씨의 성폭행은 아예 인정이 안 된 겁니까?
◆ 최말자> 안 됐죠.
◇ 김현정> 끝까지 안 됐어요?
◆ 최말자> 그렇죠. 거기에서 검사가 뺐지 않습니까? 판결문에 보면 다 나와 있어요.
◇ 김현정> 참 이게 지금 2000년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 최말자> 그렇죠. 그때 법이 그랬습니다.
◇ 김현정> 그때 법이 그랬습니까?
◆ 최말자> 네.
◇ 김현정> 50년을 그렇게 그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그냥 사신 거잖아요?
◆ 최말자> 그렇죠. 제가 힘이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농부였고 무지하고.
◇ 김현정> 그 주변에 손가락질이 제일 참기 힘들었다 하시던데 어떤 식이었어요?
◆ 최말자> 그럼요. 그 수치를 어떻게 말을 다 하겠습니까? 경찰서에서도 남자가 불구가 되었고 나도 여자로서 수치스러우니까 다른 데 결혼을 못 하니까 (둘이) 결혼하는 게 어떠냐고 비웃어가면서 경찰서에서는 그렇게 얘기했고. 마을을 다닐 수가 없었어요. 남자들이 웅성웅성대서. 내가 지나가는데 손가락질을 했어요.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그래서 이 마을을 한번 떠보자. 그래서 결혼도 해 봤어요. 그것도 실패였습니다.
◇ 김현정> 트라우마 같은 게 있으셨겠죠. 50년 넘게 그렇게 묻어두고 지내셨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사이에 이것이 분명한 성폭행이다라는 것에 대한 인지가 생겼거든요. 그런데도 용기는 못 내셨네요. 재심을 빨리 신청하시지는 못하셨네요?
◆ 최말자> 못 낸 거는 제가 약자고 제가 배운 것도 없고 아버지가 여자라고 공부도 안 시켜줬거든요. 초등학교 졸업밖에 못 했으니까. 그렇게 세월이 가다 보니까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제가 60 중반에 공부를 했어요. 공부를 하고 방송통신대 논문을 쓰기 위해서. 생각해보니까 이 사건이 제 인생에는 중요하지 않습니까?
◇ 김현정> 물론이죠.
◇ 김현정> 그렇게 해서 56년 만에 재심을 신청하게 되신 겁니다. 참 돌아돌아서 오래 걸렸어요. 결심하기까지.
◆ 최말자> 그렇죠. 제가 너무 힘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먹고 살기가 바빠서 살다 보니까 근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죠.
◇ 김현정> 지금 어떻게 살고 계세요, 선생님?
◆ 최말자> 현재는 수급자입니다.
◇ 김현정>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세요.
◆ 최말자> 네.
◇ 김현정> 이런 상황에서 재심 신청이 됐는데 사실은 기각이 됐습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판결을 뒤집을 만한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나오거나 아니면 수사 과정의 위법성이 증명된 때에만 재심 청구 가능하다 이런 조항이 있어요. 그래서 재판 자체가 지금의 기준으로는 틀렸다라고 할지라도 이런 요건들을 채우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라는 게 이번 판결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항고를 하기로 결정하셨군요?
◆ 최말자> 네.
◇ 김현정> 재판정에 다시 선다면 그 앞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싶으셨어요?
◆ 최말자> 그때도 대한민국은 헌법이 있었지 않습니까? 평등하고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얘기했지 않습니까? 법원이 법원 나름대로 잘못 판단한 것을 지금 바로 잡아달라고 얘기한 뿐이지 않습니까? 바로 잡아주면 될 거 아닙니까, 잘못된 것을. 꼭 나는 이 사건을 뒤집어서 정당방위로 무죄를 받아서 우리 후손들한테 이 부끄러운 판례를 남길 수도 없고 남겨서도 안 되고요. 나는 이 사건이 대한민국 법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거. 처음에 알았을 때 너무 충격이었어요. 참 말을 못 하고 어이가 없어서요.
◇ 김현정> 선생님, 지금 목소리가 너무 떨리고 격앙돼 있으세요. 좀 무엇보다도 건강 생각하셔야 되고요. 선생님께서 건강하셔야 계속해서 이 어려운 싸움을 해 나갈 수 있는 거니까 꼭 건강 챙겨가면서 이렇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희 이 판결 어떻게 나오는지 끝까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 최말자>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 최말자>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AS뉴스. 혀 절단 사건으로 우리에게는 유명하죠. 그 사건의 피해자는 아직도 재심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군요. 작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최근 기각 결정이 나면서 다시 항고하겠다 뜻을 밝혔습니다. 최말자 씨 사건 여러분 기억해 주십시오. AS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