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수 없는 쉼터'…학대피해 아동 '맞춤 케어' 절실

[연속기획]학대피해 아동쉼터 이대로 괜찮은가
영유아·장애아 전담쉼터 부재, 보호 제약
시설, 인력, 예산 부족…원가정 재학대 위험도
인프라 확충, 장애아 전담시설 등 대책 추진
"피해아동 유형 등에 따라 맞춤형 쉼터 늘려야"

※'학대피해 아동쉼터'는 학대당한 아이들을 부모 등으로부터 격리해야 할지를 법원이 판단하기까지 임시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공간이다. 법원의 판단이 길어지면 수개월을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쉼터는 성별구분만 있을 뿐이다. 나이나 장애와 같은 전문적 '케어'가 필요한 요소들은 간과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CBS노컷뉴스는 영유아와 장애아 등이 뒤섞여 쉼터에서조차 쉬지 못하는 학대피해 아동쉼터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더는 못 받아요…" 쉼터 찾아 떠도는 '학대 영유아들'
②'고통의 연속' 학대피해 장애 아동들 "어쩌죠?"
③'쉴 수 없는 쉼터'…학대피해 아동 '맞춤 케어' 절실
-끝-

아동학대 관련 그래픽1. 고경민 기자
'학대피해 아동쉼터(이하 쉼터)'는 부모 등으로부터 학대당한 아이들을 격리해 보호·치료하는 곳이지만, '밀착 케어'가 필요한 영유아와 장애 아동을 위한 전담시설이 없어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쉼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집중 관리가 필요한 아동들을 별도로 수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인프라와 운영 전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유아·장애아 집중 돌봄, '진땀' 흘리는 쉼터

8일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전국의 쉼터 76곳은 영유아(6세 미만)·장애아에 대한 구분 없이 성별로만 나뉘어 만 0~18세 아동과 청소년이 모두 거주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영유아와 장애아는 식사와 용변, 과잉행동까지 챙겨야 해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아이들을 동시에 돌보기에는 부대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3월 1일자 "더는 못 받아요…" 쉼터 찾아 떠도는 '학대 영유아들' / 3월 4일자 '고통의 연속' 학대피해 장애 아동들 "어쩌죠?"]

쉼터는 100㎡ 이상의 주택형태로 방 4개 이상을 갖춰야 하는데, 이 중 하나는 심리치료실로 둬야 한다. 정원이 7~8명인 걸 감안하면 2~3명이 한 방에서 뒤섞여 지내야 하는 구조다.

이 같은 공동생활 속에서는 아이들이 섬세한 관리와 치료를 받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어리거나 장애아일수록 더 예민한 데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피해 아동들을 각자 독립되고 안정된 공간에서 돌봐야 치료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력 부족도 문제다. 보육사 3명이 3교대로 근무하다 보니, 24시간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그렇다고 영유아나 장애아를 맡을 추가 전문 인력을 구할 수도 없다. 월 지원금 350만원으로는 기본 경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 쉼터 원장은 "식비에 기저귀와 분유 값, 병원비까지 대려면 빠듯한 금액"이라고 토로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쉼터 찾아 떠도는 아이들, '재학대 위험' 노출

그마저도 쉼터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난 2019년 기준 연간 전국 쉼터에서 보호받은 인원은 1천여명으로, 학대 가해자에게서 분리 조치된 3천600여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런데다 이달 30일부터 '즉시 분리제도'가 시행되면 쉼터를 필요로 하는 학대피해 아동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시설 자체가 부족한 가운데, 영유아와 장애아는 집중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당해 쉼터를 찾아 헤매는 일도 다반사다.

학대피해 아동 4명 가운데 1명꼴인 영유아는 쉼터를 찾지 못할 경우 다른 임시보호시설이나 2세 미만 영아보호소로 보내지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학대피해에 초점을 맞춘 관리를 받지 못한다.

장애아 역시 '학대피해 장애인쉼터'가 따로 있지만, 아동을 구분하지 않아 안정적인 보호를 받기 힘든 구조다. 더구나 시설 수가 부족해, 201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보호요청을 한 학대피해 장애아 중 수용된 인원은 절반에 그쳤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대피해로 분리 조치된 아이들이 제때 쉴 곳을 찾지 못하면 폭행을 당했던 집으로 돌아가 또 다시 학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정치권 대책 추진, 효과 내려면 과제도

이에 정부는 쉼터 29곳을 더 늘리고, 학대피해를 입은 0~2세 영아를 전문교육을 받은 보호가정에서 돌보게 하는 사업을 신설하는 등 각종 대책을 추진 중이다.

다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집중 보호를 위해 영아 전용 쉼터를 만들기로 했다"면서 "영유아 전용쉼터 등으로 전환하거나 새로 만드는 건 각 지자체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학대피해 장애아를 위해선 관련 전용쉼터를 조성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지난 1월 강선우(더민주·강서갑) 국회의원이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법안이 제대로 빛을 볼지는 미지수다. 앞서 지난 20대 국회 때도 학대피해 장애아동 전담쉼터를 설치하는 법안이 제안됐지만, 국회 임기가 끝나도록 심사 결론을 내지 못하고 폐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피해아동 특성 맞춘 쉼터, 인력 확충 관건"

아동학대 관련 그래픽2. 고경민 기자
전문가들은 학대피해 아동들을 보다 세분화된 기준으로 나눠 '맞춤형' 보호·치료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책을 재정비해야 된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김형모 교수는 "미국 같은 선진국은 '가정위탁' 방식으로 학대피해 아동 1명을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이 안착됐다"며 "늦었지만 우리 정부도 올해부터 이런 방식을 채택한 건 맞는 방향"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정부 계획은 아직 2세 미만 영아에 한정돼 있어 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을 구분해 관리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전문위탁가정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도 "아동들의 연령대나 장애 여부는 물론, 가출경험이나 심신상태 등 처한 상황에 맞게 쉼터 분류 기준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아이 특성에 맞는 밀착 케어를 해줘야 안정과 치료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시·군 지자체별로 최소 1개소 이상 쉼터가 있어야 한다"며 "보육 인력은 영유아나 장애아가 있는 곳은 유연하게 더 충원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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