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전국의 시·군 당 책임비서들을 평양으로 불러 모아 현안을 논의해 결정하는 '회의'가 아니라 '강습회'를 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강습회, 특별한 당면 현안에 대한 사상교육…8차 당대회 결정 관철
북한에서 강습회는 강연회나 학습회처럼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주관 하에 인민들을 직접 대면해 사상 교양을 실시하는 선전선동 방식이다.
다만 학습회가 이미 수립된 기획에 따라 매달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면 강습회는 중요 사안이나 새롭게 제시된 내용을 가지고 임의의 시각에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학습의 형태이다.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나 당의 노선과 정책이 새로 하달되면 이를 신속히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실시하는 캠페인적인 학습 형식이 바로 강습회이다.
요컨대 강습회는 특별한 당면 현안에 대한 사상교육, 사상 교양이다.
통상적으로 초급 당 단위에서 인민들을 상대로 실시하던 주입식 사상교양 '강습회'를 시·군 당 책임비서들을 평양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로 불러 모아 실시한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 총비서'의 개강사로 강습회가 '개강'됐고,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정책보고를 통해 지방 당 사업에서 나타난 결함과 편향을 강하게 비판했다.
◇수령이 직접 시·군당 책임자 사상교양에 나선 이유?
강습회 사흘째 날(5일)에는 김재룡 당 조직지도부장과 오수용 당 경제비서까지 등장했다.
당 총비서, 당 조직비서, 당 조직지도부장, 당 경제비서가 총출동해 '강습'을 주도한 강습회는 북한의 설명대로 전례가 없는 일로 관측된다.
수령이 사상교양에 나설 정도로 현 시점에서 지역 말단 단위의 당 책임자에 대한 사상무장 사업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강습회 개강사와 결론에서 한 발언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김 위원장 발언 |
①농업과 지방건설 등 정책현안에 대한 독려 "시·군당 책임비서들 앞에 나서는 선차적인 경제과업은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는 것이다.…특히 농업부문에 뿌리깊이 배어있는 허풍을 없애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야 한다.…농촌마을들을 시대문명의 높이에서 꾸리기 위한 계획을 현실성 있게 세우고 지방건설을 힘 있게 내밀어야 한다.…인민소비품생산을 늘이며 풀 먹는 집짐승 기르기를 비롯한 축산을 많이 하고 양어를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인민생활을 향상(시킨다)" ②기층 단위 군중에 대한 사상교양, 비사회주의 투쟁 강조 "시·군당 책임비서들은 농촌에 대한 지도사업에서 농사일에만 치중하지 말고 3대혁명을 추진하며 리당사업을 추켜세우는데 모를 박아야 한다. 시·군당 조직들이 군중을 교양하고 각성시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법을 부단히 탐구 적용하여 온 사회에 혁명적이고 건전한 생활 기풍이 확고히 지배되게 하며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를 제압 소멸하는 투쟁이 대중 자신의 사업으로 전환되게 해야 한다" ③부정부패 금지 등 지방 당 간부에 대한 각성 촉구 "시·군당 책임비서들이 발언과 행동, 도덕풍모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대중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며, 그러자면 자신을 특수화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아랫사람들과 인민을 존중하며 혁명선배들을 존경하여야 한다.…사업과 생활에서 청렴 결백성을 견지하고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자기 자신이 당 앞에, 인민 앞에 결백할 뿐 아니라, 가족, 친척들도 절대로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못하게 신칙하며 군 안의 모든 일군들이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장악 통제해야 한다" |
"8차 당 대회에서 전국의 시군들을 자립적으로 다각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정책적 방향들 밝혀줬다"고는 하지만, 농업생산 증대, 지방건설 촉진, 인민소비품 증대, 축산과 양어 활성화 등 그동안 해왔던 얘기의 반복이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기도 어렵고, 기존 정책에서도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인민생활 개선을 위해 증산에 나설 것을 주문하면서도 당 간부 자신의 각성과 함께 기층 단위에서부터 실효성 있는 사상교양, 즉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투쟁'을 적극 벌여 나갈 것을 강조한 이유이다.
강습회 교육을 통해 시·군당 책임비서들의 사상을 무장시키고 이를 토대로 인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 강화를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군당책임비서 강습회와 유사한 '선전선동' 가동 가능성
북한은 이번 강습회를 "당 제8차 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첫 부문별회의"라고 설명한 만큼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협의체가 가동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차 당 대회이후 당 전원회의와 당 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내각 전원회의 등 중앙 차원의 각종 회의를 주재한 김 위원장은 앞으로 지방이나 생산 현장의 인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현장정치, 현장 교양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북한은 이미 대중단체를 동원해 청년, 노동자, 농민, 여성 등 각계 인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을 강도 높게 시행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말 남한 등 외부문물 유포자를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내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고 지도자가 직접 사상교육에 나서고 외부문물을 차단하는 법까지 제정할 정도로 북한이 사상통제를 강화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8차 당 대회 결정 '자력갱생'…사상통제 없이는 불가능
북한은 올해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불투명한 북미관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올 해초 8차 당 대회를 통해 자력갱생의 정면 돌파를 더욱 강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북한식 전략적 인내이자 버티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자력갱생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상통제가 필수불가결하다. 사상교양을 통한 '일심단결'이 없이는 자력갱생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력갱생과 사상통제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북제재의 장기화와 코로나19에 따른 무역단절로 북한 인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사상통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심야열병식에서 인민을 향해 눈물까지 흘리며 자책을 하고, 올 들어서는 당·정·군의 힘 있는 특수기관을 향해 집중적인 경고를 한 뒤 기층 인민들에게 다가서는 하향식 선전선동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최고 지도부의 자기반성을 전제로 하는 친인민적 행보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사상통제는 일정한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