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했다. 만연한 차별과 배제 속 트랜스젠더들에게 강요되는 가치는 은둔일터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성소수자 동료들과 시민사회계는 그래서 이들의 빈자리에 더 절망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잖아요. 충분히 용기 있고 단단하신 분들이었는데, 끝내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게 참 슬퍼요"
23살 트랜스젠더 A씨는 올해 한 대학의 새내기가 됐다. 그는 지난해 숙명여대 법학부의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했지만 학내 반대여론에 떠밀려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희망하던 학교에 입학을 포기한 A씨와 강제전역 처분을 당한 변 전 하사는 한 언론을 통해 서로에게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변 전 하사는 A씨에게 "우리 모두 서로 힘내도록 합시다. 죽지 맙시다.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들의 죽음은 이 사회에 혐오가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여실히 드러내 준 계기"라면서도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지금까지 보여주신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A씨나 변 전 하사와 같은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 트랜스젠더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로부터도 백안시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생물학적 여성'만을 우군으로 받아들이는 터프(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등 일부 여성들은 MTF가 여성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다며 배척하기도 한다.
일명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을 자청하는 한 여성이 지난 3일 변 전 하사의 죽음을 두고 '(변 전 하사는) 여자가 아니다', '한 남자가 죽었네. 끝'이라며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깎아내린 것이 단적인 예다.
다만, A씨는 트랜스젠더가 특별히 성소수자의 '최전선'에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고, 이같은 표현이 적합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굳이 (트랜스젠더의 설 자리가 적다고) 말을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아무래도 눈에 잘 띄어서일 것"이라며 "그래서 더 사람들한테 불편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성애 등) 성적지향보다는 성정체성을 숨기기 어려운 상황이 더 많지 않았을까요. 성적지향이 다르다 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남들) 눈에 띄지 않았을 테니까요. 지금껏 우리 사회는 그걸 요구해왔고요. 그런데 본인의 정체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 하나만으로 그 사회에서 보여주는 걸 다 깨버려야 하는 상황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MTF 트랜스젠더들이 화장이나 옷차림을 통해 관습적인 여성성을 과장하고, 여성들의 '코르셋'을 부추긴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성적 정체성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MTF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외모로 남녀를 이분화하는 기준이 너무도 공고한 한국 사회에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MTF 트랜스젠더가) 머리도 다 짧게 자르고, 옷차림도 그렇게(남성적으로) 입고 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대부분 사람은 그 사람의 성정체성을 제대로 인정해주기보다 그냥 '남자애'라고 볼 거 아니에요. 자신의 성정체성을 남들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관습적 여성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오히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 2007년 이후 15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답답함도 털어놨다. A씨는 혐오발언이 공적으로 발화될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A씨는 "혐오발언을 '안 보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증오하고 싫어한다는 걸 반복적으로 듣는 게 절대 쉽지 않다"며 "자신의 부모부터 온갖 수단으로 (그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말했다.
많은 성소수자들의 마음은 병들어 있다. 변 전 하사 역시 생전 거주지 근처의 청주 상당구 정신건강센터를 다녔다. 하지만 A씨는 상담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상담은 결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어요. 사회로부터 격리돼 정상적 인간관계도 망가지고, 금전적인 것까지 목을 죄어오잖아요. 정말 힘든 누군가에게 그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계속 살아가 달라고 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제 주변에서 한 번이라도 극단적 선택을 해봤다는 사람이 지난 5년간 6명이 넘어요. 이게 정상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고 결코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고요. 적어도 저는 단지 몇 사람의 죽음이라고만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A씨는 4일 변 전 하사의 빈소에 다녀왔다. 그는 앞으로도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우리 사회도 그래야한다. 편견과 차별 속에 더 많은 성소수자를 잃을 수 없는 이유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