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폐단을 지적했다.
풀기 힘든 과거사 갈등을 경제·안보 문제와 떼어놓음으로써 한일관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해온 과거의 지혜를 되살리자는 제안이다.
이는 일본에 '원 트랙' 전략을 고수하다 자승자박한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하지만 2년 뒤인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유화책으로 표변하더니 급기야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이후 악화일로의 한일관계는 그 후폭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투 트랙을 통한 대화 재개와 관계 복원을 끊임없이 타진해왔다.
물론 일본 반응은 냉담했다. 아베와 스가 정부로선 위안부 합의 도장이 '불가역적'으로 찍힌 판에 별로 아쉬울 게 없는 꽃놀이패를 잡았다.
문 대통령이 이번 3.1절에 한층 더 유화적 태도를 보였지만 일본은 구체적 해법을 요구하며 요지부동 고압적으로 나온 것이 잘 말해준다.
한국이 원 트랙에 대한 반성에서 투 트랙으로 선회하자 이번엔 일본이 원 트랙으로 버티는 형국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중재라는 변수가 있지만 한일 대치전선은 선거 등 국내외 사정을 감안할 때 지루한 '참호전'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로선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이번엔 일본이 성의를 보일 차례라며 공을 넘긴 것이다. 서로 참호 안에 웅크린 채 명분 축적을 위한 선전과 심리전이 오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3.1절 메시지를 비롯한 최근 대일 유화 기조가 또 다른 악의적 프레임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내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미국 바이든 정부를 의식한 일종의 외교적 '알리바이'로 의심하고 있다.
정부는 비교적 실용주의자로 알려진 스가 총리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이례적으로 박지원 국정원장까지 보내 대화를 타진했다. 한국의 대일 훈풍이 바이든 집권과 무관함을 알 수 있다.
더 고약한 프레임은 문 대통령의 대일 정책기조가 '정신분열적'으로 갈팡질팡 한다는 비판이다.
외교부 1차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지내며 위안부 협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이다.
그래도 볼턴은 한국 물정 모르는 이방인이고 미국 군산복합체를 대변하는 초강경 네오콘이니 그 입장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다. 반면 돌아가는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조 의원이 왜 그랬는지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문 대통령이 아베와 달리 스가 총리 집권 이후 웃는 낯빛으로 바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표정 변화와 상관없이 일관적으로 대화를 제의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베의 끝없는 '한국 때리기' 앞에서 마냥 웃기만 한다면 그게 오히려 정신분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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