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은 17세기 조선시대 몰락한 양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잔반은 추레한 차림으로 자리를 짜고 있고 아내는 곁에서 물레질을 하고 있으며 아들은 아랫도리가 알몸인 채로 글을 읽고 있다.
그래도 양반이랍시고 사방관이라는 갓을 쓰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몰락한 대부분의 잔반들은 이렇게라도 먹고 살았지만 일부는 족보를 파는 등 구차하게 생계를 꾸려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임하는 국민의힘 처지가 딱 이런 잔반 신세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최종 단일화다.
양측 간에 단일화를 둘러싸고 신경전이 치열하다.
여론조사 문항, 국민참여경선, 안철수 대표의 입당 또는 합당 문제가 쟁점이다.
국민의힘에게 네 가지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다.
세 가지 길은 더 큰 몰락으로 가는 길이며 살 길은 단 하나 뿐이다.
안철수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안철수 중심의 보수야권 개편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야권개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해 안 대표에 끌려다니며 자칫 1년 뒤 대선후보 자리도 위협받을 수 있다.
안철수 대표가 본선에서 패할 경우에도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제1야당이라는 후유증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후보가 된 뒤 본선에서 여당후보에 패할 경우에는 분당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이같은 처량한 상황의 원인은 국민의힘이 자체 경쟁력을 갖지 못한데 있다.
족보를 내다 팔면서 살았던 잔반처럼 안철수 대표에게 족보를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기호 2번이 되지 않으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 대표에게 입당을 하거나 국민의힘과 합당하라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속내는 안철수를 위한 선거운동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후보가 안되면 위원장직을 사퇴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국민의힘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자당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고 본선에서 승리하는 것 밖에 없다.
25% 확률이다. 잘 나가는 양반의 길만 걸어온 국민의힘으로서는 진퇴유곡의 상황이다.
국민의힘이 이번에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데 실패할 경우, 잔반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결국, 국민의힘 후보가 무조건 승자가 되야만 국민의힘이 생존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가 됐다.
국민의힘이 어떤 길을 걸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