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주관으로 28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수상 소감을 전한 연출자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 이야기"라고 운을 뗐다.
"그 언어는 단지 미국의 언어나 그 어떠한 외국어보다 깊은 진심의 언어다. 나 스스로도 그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물려주려고 한다. 서로가 이 사랑의 언어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특히 올해는."
단지 한국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그간 타국 주요 작품을 주로 소개해 온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미나리'의 가치를 가둔 HFPA에 대한 정중한 질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앞서 지난달 3일 제78회 골든글로브 후보 발표 당시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후보로만 지명되자 현지에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미국 매체 인사이더는 "'미나리'는 미국 작품임에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 후보에 올랐다. 사람들은 '미나리'가 왜 작품상 후보로 부적격이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골든글로브가 후보 목록에 (해당 작품이) 어느 나라 영화인지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우스꽝스럽게 됐다. '미나리' 아래 '미국'이라고 나온다"고 꼬집었다.
골든글로브는 '50% 이상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할 경우 외국어영화로 분류한다'는 지침을 따른다. 이는 올해 자국 영화인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 근거다.
그러나 지난 2010년 열린 제6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이 영화로 배우 크리스토프 발츠는 남우조연상을 탔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유럽을 다룬 이 작품을 본 이들은 극중 대사가 대부분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이는 미국 사회가 여전히 주류 백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종과 그들의 문화를 쉽게 용인하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미나리' 주연 배우 스티븐 연이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한 아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에 사는 한국계 배우로서 소수인종을 다루는 대본을 받게 되는데, 주로 관객에게 그 인종의 문화를 설명하는 게 많다. 주류 백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것이다. '미나리'는 한국인이 쓴 매우 한국적인 이야기면서도 보편적인 가족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공감하는 주제를 다룬 시나리오가 워낙 훌륭했다."
'미나리'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시작으로 이번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75관왕에 오르면서 여전히 기록 행진 중이다. 지금 미국 사회에 부는 '미나리' 돌풍은 미국이 이민자들의 피 땀 눈물 위에 세워진 다문화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셈이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이 주연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이 미국 영화인 것과 매한가지다. '미나리'가 1980년대 미국으로 건나간 한국인 가족의 희로애락을, '갱스 오브 뉴욕'이 1860년대 아일랜드계 미국 이민자들의 악전고투를 그렸다는 사실은 두 영화의 결을 하나로 묶는다.
역사 속에서 약자와 소수자를 품었던 문명은 늘 지구촌 곳곳에 특별한 영감과 감동을 전파했다. 그 가치는 여전히 인류의 남다른 유산으로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영화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는 다음달 25일 제93회 시상식에 앞서 오는 15일 최종 후보를 발표한다. 아카데미는 지난해 봉준호 감독 작품 '기생충'에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주면서 시대정신에 따른 변화를 택했다. 올해 아카데미가 과연 '미나리'를 어떻게 품어낼지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