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단계씩 낮추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국민적 피로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확진자 추이와 자영업자 상황을 고려해 단계를 조정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해외입국자 2주 자가격리' 조치는 시행 1년이 다 돼 가지만, 그 어떤 변화의 조짐도 없는 상황이다. 반면 일부 국가에서는 확진자 추이와 출국 국가의 상황에 따라 입국자 자가격리 기간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국내 여행업계 등에서는 "'위드코로나' 상황에서 무조건 14일이 아닌, 거리두기처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WHO의 최대잠복기 기준 적용"…일부 국가선 입국자 격리 7~10일
27일 한국여행업협회(KATA)가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로부터 받은 답변에 따르면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14일'이 시행된 지난해 4월 1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해외입국자 진단검사는 총 10만 4829건(미결정 제외) 이뤄졌고, 확진자는 1900명(내국인 1212명, 외국인 68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 건수 대비 확진 비율은 1.8%다.
'14일'은 코로나19의 최대 잠복기간 때문에 도출됐다. 중대본은 "자가격리 기간은 감염병 병원체 등 위험요인에 마지막으로 노출된 날부터 해당 감염병의 최대잠복기가 끝나는 날까지로 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및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코로나19 최대잠복기는 14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코로나19 최대잠복기를 적용해 14일로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일부는 상황에 따라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 기간을 조정하고 있다. 자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추이와 함께 입국자가 출발한 국가가 방역모범국인지, 코로나19 상황은 어떠한지 등에 따라 탄력적으로 의무 자가격리 기간을 조정하고 있다.
외교부의 '코로나19 확산 관련 각국의 해외입국자에 대한 조치 현황'(전날 기준)에 따르면 출발 72시간 이내 검사받은 코로나19 음성확인서가 있으면 영국·스위스·네덜란드 등은 의무 자가격리 기간이 10일이다. 프랑스·그리스 등은 7일이다. 미국은 주(州)별로 7·10·14일 등 상이하다.
출발하는 국가의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조치를 다르게 하는 곳도 있다. 독일은 위협지역발 입국자는 10일간 격리를, 변이 바이러스 발생국발 입국자는 '입국 금지' 등을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출발국이 '저위험군'이면 7일, '중위험군'은 14일씩 격리하고 있다.
◇여행업, 매출 84%25 감소…"입국자 격리 기간도 거리두기처럼 기준 만들어야"
일각에서는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기간을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이 상황별로 단계를 만들어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거리두기는 자영업자 고통을 반영해 조정하면서, 입국자 자가격리 조치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가 1년째 지속하는 상황에서 다수 선진국들은 방역에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학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일률적으로 보수적인 방역 원칙만 고수하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여행업계와 '수출전사' 중소기업인들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여행업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대부분 '개점 휴업'인 상황이다. 한국여행업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전국 여행업 등록업체 1만 7664개 중 여행업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1만 3081개였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2조 580억 원으로 2019년 12조 6439억 원과 비교해 83.7%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아울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5일'이라는 연구 결과 등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앞서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진은 코로나19 잠복기 평균이 5.1일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14일간의 격리 이후 증상이 발현될 가능성은 약 1% 정도로 봤다.
미국 CDC 또한 최근 코로나19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권장되는 자가격리 기간을 기존 14일에서 7~10일로 단축하는 내용을 검토 중이다. CDC는 자가격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코로나 진단 결과 음성 판정이 나오면 7일 격리를, 발열 등 증상 유무를 매일 확인해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10일 격리를 하는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무조건 입국자의 자가격리 기간을 줄여달라는 게 아니"라며 "지금까지 입국한 사람 중 확진자가 나온 경우를 자가격리 일자별로 통계화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 "기간 단축, 작년이라면 가능…지금은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안돼"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변이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입국자의 검역 완화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는 "세계적으로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입국자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며 "잠복기가 14일 보다 긴 경우도 있는 만큼 14일이라는 기준을 그대로 지키는 게 중요하다. 업계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10일로 줄어든다고 해서 어려움이 해소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별로 코로나19를 대하는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격리 기간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순천향대 감염내과 김탁 교수는 "미국·영국 등은 '완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이들은 방역 대책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니까 이를 최소화하면서 격리 기간 이후 확진된 사람이 지역사회에 퍼지더라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억제 전략'을 쓰고 있다. 확진자를 용인하는 게 아니고 최대한 억제하면서 백신을 맞고 정리하는 단계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에 따라 선택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외국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상황에서 출·입국자의 격리 기간 단축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 정부는 "격리기간 단축 국가도 '최대잠복기 14일'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며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 기간을 계속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협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이 단계별·상황별로 조정 실시할 계획이 있는가'라고 묻자 중대본은 "현재는 조정 실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금껏 해외 입국 확진자의 '격리 기간별 확진 현황' 등 기본적인 통계조차 집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대본은 협회 질의에 "평균 잠복기 및 격리 기간별 확진자 발생 현황 정보는 따로 보유하고 있지 않아 제공이 불가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