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대상자로 추정되는 의원들이 정보 공개에 조심스러운 입장이고, 국정원도 정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고 있어 당에서 내세운 투트랙(개별 의원 정보공개 청구+특별법 추진) 전략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상 의원들 사찰 문건 공개에 신중…"TF 구성도 당장 하진 않을 것"
같은당 김태년 원내대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무수석이었던 박형준 부산시장 예비후보를 향해 "진실이 드러날 일인데 뻔한 정치 공세로 은폐하려고 한다"는 등 날선 공격을 이어갔다.
그런데 정작 불법사찰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기로 했던 의총에서는 김병기 정보위원회 간사의 보고만으로 끝났다.
지도부의 공식 발언과는 다소 대조적인 모습이다.
민주당은 다음주 중 TF를 꾸릴 예정이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일단 국정원 대응을 보면서 논의해야 하는데, 상황이 아직도 깜깜이"라며 "지금 단계에서 특별법 발의를 논의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정원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국회 정보위 핵심 관계자는 "목록과 대상자수를 공개하라는 건데, 국정원은 분류가 되지 않았다며 불법사찰 문건을 못 내놓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보는 게 사찰 방식을 파악하는 데 가장 낫다"고도 했다.
불법사찰 대상과 문건 제목 등을 특정한 리스트를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는 문건을 영구폐기하기 위한 국정원60년흑역사청산특별법(가칭)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불법 사찰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다른 변수는 사찰 대상이 됐다는 민주당 의원들이 정보공개 청구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도부가 투트랙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원내 지도부엔 "정보공개 청구를 꼭 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한 중진의원은 "사찰 문건에 사실도 있겠고 허위정보도 있을 건데,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상당수 의원들이 사적인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서 당 지도부가 의도한 정보공개청구도 예상보다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집된 문건 수 20만건, 사찰대상 2만명?
야당의 주장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불법사찰이 이뤄졌을 수 있고, 사찰대상이 2만명이라는 민주당의 추정보다 훨씬 소규모일 경우 야당에 역공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런 데다 이른바 '칸막이 문화'가 강한 국정원의 조직 특성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정원 데이터베이스에 접근권한이 있더라도 사찰 문건을 작성한 사람 외에는 사찰 문건에 쓰인 정확한 키워드를 모르기 때문에 실제 불법사찰 규모보다 축소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