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9월 10일 오후, 수원버스터미널을 나오던 자폐성 장애 3급 김영민(가명·32)씨 앞을 경찰관 두 명이 가로막았다. 처음 듣는 말과 낯선 사람들. 당황한 영민씨는 그 순간 '자위'가 무슨 말일까 생각했다고 한다.
밖은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영민씨는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렀다. 경찰에게 허벅지가 가려워서 긁은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영민씨는 결국 하얀색 경찰차에 몸을 실었다. 10분쯤 달렸을까. 파출소에 들어서자 동행한 경찰 중 한 명이 '진술서'라고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불러주는 대로 적으면 집에 갈 수 있어요".
그날 영민씨가 수원 권선파출소 책상에서 쓴 '엉터리' 진술서는 다음 한 문장이 전부다. '2019년 9월 10일 5시 20분 경에 7001번 버스 안에서 다리를 쭉 뻗고 자위행위를 했다.'
그로부터 2주 뒤 영민씨는 수원남부경찰서에 출석해 피의자 조사를 받았고, 결국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됐다. 버스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그리고 영민씨의 자백 진술이 주된 이유였다. 수원지검은 그해 11월 18일 영민씨에게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꼼짝없이 범법자가 될 상황에서 영민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영민씨 어머니가 사건을 처음 듣게 된 것도 이맘때쯤이었다. 영민씨 어머니는 "너무 놀랐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강압적인 경찰 조사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이 억울하고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재판 과정에서 영민씨는 "버스에서 자위행위를 한 적이 없고, 아토피 피부질환을 앓고 있어 허벅지를 긁은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처음 경찰에 붙잡혔을 때 했던 말이다.
또 "자폐성 장애 특성인 상동행동 때문에 목격자가 자위행위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상동행동은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행동적 특성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이 같은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1심 법원은 영민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원지법 형사6단독 정성화 판사는 지난해 8월 28일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로는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 판사는 "피고인이 2018년 2월부터 양쪽 허벅지에 발생한 피부염으로 장기간 치료를 받아온 점이 인정되고, (허벅지를 긁은 행위가) 자폐성 장애 3급의 중증 장애로 인한 이상행동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처음 영민씨를 신고한 건 같은 버스에 탔던 20대 최모씨였다. 영민씨는 버스 맨 앞줄 가장 오른쪽 좌석에 앉았고, 신고자 최씨는 앞에서 세 번째 가장 왼쪽 자리였다. 영민씨의 하반신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위치였던 셈이다.
법원도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정 판사는 "최씨가 피고인을 처음 주의깊게 봤을 때는 피고인 신체가 버스 좌석들에 가려져 머리 부분만 보이는 상태였을 것"이라며 "CCTV 영상을 보면 피고인이 몸을 비정상적으로 흔들고 있어 자위행위로 오인할 소지가 다분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는 피고인이 바지 안에 손을 넣어 자위행위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버스 CCTV 영상을 보면 피고인의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간 적은 없다"며 "선입견을 품은 상태에서 신고자가 잘못 인지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은 1심 선고 나흘 뒤인 지난해 9월 2일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다. 영민씨 어머니는 "항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 어떻게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이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끝난 줄 알았던 고통이 다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이달 18일 수원지법에서 열린다.